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고택(故宅)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에 위치하고 있다.
예산 여행 코스..
예산시장-예당호 출렁다리-충의사-수덕사- 추사고택-화순옹주 홍문-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백송공원-예산 용궁리 백송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고택(故宅)..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266.11m²(80.5평)으로 솟을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 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 홍문이 있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石年(석년)..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라는 말에 공감~
김정희(金正喜)는 1786년(정조 10)에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유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김정희는 유 씨가 임신한 지 24개월 만에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조금 자라서는 큰아버지 김노영(金魯永)의 양자가 되었다.
김정희의 본관은 경주고,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이다.
김정희가 7세가 되던 때 입춘첩(立春帖: 입춘에 대문이나 기둥에 행운과
건강 등을 기원하며 쓰는 글귀)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채제공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 누구의 집이냐고 물으니 김노경의 집이라고 했다.
채제공은 김노경의 집과 대대로 혐의가 있어서 서로 왕래하지 않고 지내왔으나,
김정희의 글씨를 보고 특별히 방문했다.
그러자 김노경이 깜짝 놀라 “대감께서는 어찌하여 소인의 집을 다 방문하십니까?”라고 했다.
채제공이 “대문에 붙어 있는 글씨를 누가 쓴 것인가?” 하고 묻자,
김노경이 “우리 애가 썼다”고 대답했다.
이에 채제공은 “이 아이가 반드시 명필로 일세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러나 글씨를 잘 쓰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마라.
만약 문장으로써 일세를 올린다면 반드시 크게 출세할것이다”라고 했다.
김정희의 재주는 시·서·화에 대한 감정이 첫째고,
글씨가 그다음, 시문을 짓는 것이 그다음이었다.
1809년(순조 9) 생원시에 합격했고,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해
예조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보덕을 두루 역임했다.
1836년(헌종 2)에 병조참판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풍양 조 씨와 안동 김 씨 두 가문에 대한 언동으로도 알 수 있듯이
김노경은 바른 소리를 잘하는 강직한 정치가의 면모가 있었다.
그래서 김노경은 당대를 대표하던 두 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김유근과 조병구 등은 이미 죽은 김노경이 본래 벽파를 지지했으니
소급해 벌을 주자고 주장했다.
결국 김노경을 추죄하면서 승지였던 아들 김정희는 1840년(헌종 6)부터
1848년(헌종 14)까지 9년간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1856년(철종 7) 10월, 김정희는 71세의 나이로 경기도 과천에서 죽었다.
추사 김정희 묘는 본래 첫 부인인 한산이씨만 묻혔다.
추사선행과 두 번째 부인 예안 이씨는 과천에 묘가 있었는데
1937년 이곳으로 이장해 세 명을 합장하였다.
봉분 앞 비석 전면에는 '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라고 각서되어 있다.
추사 기념관..
세한도(歲寒圖)는 조선 헌종 때 제주도에 유배 중에 있던 추사 김정희가 그린 그림으로,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원소유주로부터 기탁받아서 전시하다가,
현재는 완전히 기증받아서 소유하고 있다.
세한도의 크기는 23 X 69.2 cm이다.
이 그림은 추사가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인
120권 79책짜리 황조경세문편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추사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보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있구나."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청나라에 가져가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를 비롯한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제찬을 받아 조선으로 가지고 돌아온 후
문인 3명에게 또 제찬을 받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한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을 찾았는데
화순옹주는 TV 드라마 이산에서도 등장해서 그동안 궁금했었다.
공주와 옹주 차이점은 공주(公主)는 왕비에게서 낳은 딸..
옹주(翁主)는 후궁에게서 낳은 딸..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
지고지순(至高至純)은 화순옹주를 위해서 써야하는 말인 것 같다.
그나저나 울마눌님은 들바람 죽으면 어떻게 할까~
화순옹주 홍문 좌측에는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가 있고
우측에는 백송공원이 있다.
화순옹주(和順翁主)는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정빈이씨(靖嬪李氏)이다.
1725년(영조 1)에 화순옹주로 봉해졌고, 1732년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아들인
월성위 김한신(金漢藎)과 결혼하였다.
화순옹주는 혼인한 지 16년이 지난 1758년(영조 34)
남편인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곡기를 끊고 남편의 뒤를 따르려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영조는 “화순옹주는 월성위가 죽은 뒤로부터 7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고 하니,
음식을 권하지 않고 좌시하면, 어찌 아비 된 도리라 하겠는가?”라며
화순옹주를 찾아가 미음 먹기를 권했다.
그러나 화순옹주는 영조의 명을 따라 한 모금 먹다가 토해 냈고,
이를 본 영조는 한 번 먹은 마음을 돌리지 않으려는 옹주의 뜻을 알고
탄식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화순옹주는 결국 음식을 끊은 지 14일 만에 사망하였다.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조선의 열녀문으로 정면 8칸, 측면 1칸이다.
백송(白松)은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으로
중국 특산이며 희귀수종으로 가꾸고 있다.
높이 15m, 지름 1.7m에 달하는 큰 나무이다.
가지가 크며 수관은 둥글게 발달한다.
잎은 3개씩 달리고 눈비늘이 일찍 떨어지며 길이 7∼9cm, 너비 1.8mm이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긴 타원형이며 암꽃은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구과로서 다음해 10월에 익는다.
길이 6cm, 나비 4.5cm로서 달걀 모양이고 50∼90개의 열매조각이 있다.
열매조각은 갈색이 돌고 옆으로 난 주름살이 있다.
종자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 9∼12mm, 지름 7.5∼9mm로 검은빛을 띤 갈색이지만,
반점과 더불어 날개가 있다.
종자를 발아시키기는 쉬우나 이식이 어렵기 때문에 그리 퍼지지 못하였다.
수피가 큰 비늘처럼 벗겨져서 밋밋하고 흰빛이 돌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
화순옹주홍문으로 되돌아가서 백송공원으로~
白松公園(백송공원)..
백송공원을 나와서 애마를 타고 예산 용궁리 백송으로~
예산 용궁리 백송은 추사고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
천연기념물 제106호 예산 용궁리 백송(禮山 龍宮里 白松)은
추사 김정희의 고조부 김흥경묘 아래에 있다.
예산 용궁리 백송(禮山 龍宮里 白松) 유래..
예산 용궁리 백송에서 예산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경을 했는데
아름다운 마눌님과 함께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 / 김혜윤
봉숭아빛 손가락으로 치던 오르간
잠자리 내려앚은 감나무 밑 막걸리 내음
헤진 포대기 자락 끝으로 나온 양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면서
주머니에 남은 전부인 것들
동전 몇 개만으로도
이 작은 손에 다 쥘 수 없을 만큼
벅차고 어여쁘던 날들
생이 끝나도록 여전한 건
귓가에 남은
끈덕하고 뭉근한 엄마의 목소리
밥은 먹었누
충남 예산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아름다운 마눌님과 함께 해서 그런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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