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하고 있는 충의사(忠義祠)를 찾았는데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예산 여행 코스..
예산시장-예당호 출렁다리-충의사-수덕사-추사고택-화순옹주 홍문-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백송공원-예산 용궁리 백송
충의사에서 바라본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충의사 관람코스는 윤봉길의사 사당-운봉길의사 기념관-저한당-광현당
충의사(忠義祠)는 윤봉길(尹奉吉, 1902∼1932) 의사의 사당으로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하고 있다.
충의사는 면적 14만 7,802㎡로 윤봉길의 영정을 봉안한 본전,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광현당),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던 성장가(저한당)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윤봉길(尹奉吉)은 본관 파평 윤씨, 본명은 우의, 아호는 매이며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1918년 덕산공립보통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식민지 노예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
1932년 봄 임시정부를 찾아가 민족의 광복을 위해 몸과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해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개최된 일본의 전승축하기념식에서
물통폭탄을 단상에 던져 일본의 군부와 관부 인사들을 사상시켰고
현장에서 체포된 후 사형 당했다.
이 거사는 임시정부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로부터 지원을 받아
항일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에는 유물 5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윤봉길의 짧은 삶을 매직비전,
각종 영상, 디오라마 등으로 연출하여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 4월 27~29일에는 윤봉길의 애국과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매헌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충의사와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차도를 건너 저한당과 광현당으로 진행을 하는데
14년 전 2009년 3월에 찾았던 수암산과 덕산온천이 한눈에 들어왔고
세월 한 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한당(抯韓堂)..
저한당에서 대지천을 건너서 광현당으로~
대지천교에서 10년 전 2013년 9월에 찾앗던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남연군묘가 있는 가야산을 바라보는데 지난 산행이 아련했다.
광현당(光顯堂)..
충의사에서 숙연한 마음을 안고 수덕사로~
2013년 9월 덕숭산 가야산 연계산행을 하기 위해서 찾았던 수덕사를 10년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동안 변한 게 없어서 눈에 익숙했다.
10년 전에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수덕사행 버스가 있었는데 없어졌고
지금은 삽교역에서 수덕사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탐욕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수덕사는 송춘희씨가 부른 노래 수덕사의 여승 때문에 더 유명해졌고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가 함께 기거하는 사찰이다.
수덕사의 여승 / 송춘희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뜨고없는 잊을길없어
법당에 촛불켜고 불러올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새에 맺은 사랑 잊을 길없어
법당에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 운다.
일주문에 걸린 德崇山修德寺(덕숭산수덕사) 현판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글씨..
사찰 입구에 있는 사천왕문(四天王門)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봉안하고 있는데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외호신(外護神)이 있다.
사천왕문(四天王門)은 사찰을 수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출입하는 중생들에게
이 수호신들이 사찰 내의 모든 악귀들 쫒아내었다는 것을
상징직으로 보여주는 역활을 한다.
원래 사천왕(四天王)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명의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미상~916년)은 중국 명주 봉화현 태생의 선승(禪僧)으로
이름은 계차(契此)이다.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사람들에게 기부 받은 물건을 담은 포대를 메고 거리를 배회해서
포대화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대화상은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걸식하는 고아, 굶주린 이들을 위해
종일 탁발을 하고 그것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줬다.
그에게 물건을 얻은 가난한 이들은 그때부터 재복이 일어나 가난을 면하고,
음식을 얻어먹은 이들은 먹을 복이 생겨 굶주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을 중국 민간에서는 혜비수(惠比壽),
대흑천(大黑天), 비사문천(毗沙門天), 수노인(壽老人),
복록수(福祿壽), 변재천(弁才天)과 더불어
칠복신(七福神)으로 받들어진다.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소신만리유) / 고고히 몸은 만 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청목도인소) /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라.
問路白雲頭(문로백인두) /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 / 천백의 몸으로 나누어
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 /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時人自不識(시인자불지) /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罣碍(허공무가애) /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遍宇宙(전개편우주) / 열어 펼치면 우주에 두루하고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 / 오무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사찰로서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제30대 왕 무왕(武王) 때 혜현(惠顯)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설하여 이름이 높았으며,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때
나옹(懶翁:혜근)이 중수하였다.
일설에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지명(智命)이 창건하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제26대 왕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
10년만에 다시 찾은 수덕사를 나와서 애마를 타고 추사 김정희 고택으로~
마을버스 / 김혜옥
오늘도 달린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할아버지를 태우고
슈퍼에 가는 아주머니를 태우고
학교에 가는 학생을 태우고
오늘도 달린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누군가의 건강을
누군가의 맛있는 저녁을
누군가의 배움을
마을의 일상을 담아
오늘도 달린다
산행을 하기 위해서 찾았던 예산을 마눌님과 함께 다시 찾았는데
세월 한 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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