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국제시장 자유공원 차이나타운(2026.3.12)여느 재래시장과 다를바 없었고 세월 한 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들산바람 2026. 3. 18. 20:05

아름다운 답동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길건너 바로 맞은편에 있는

신포국제시장을 찾았는데 신포역 5번출입구에서 가깝게 있다.

 

신포국제시장(新浦國際市場)은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해 있다.

제물포 조약으로 제물포가 개항된 이후 1884년 인천화상조계장정이 채결되어

청의 조계지가 설정되었다.

이후 청나라에서 여러 사람들이 건너왔는데, 그 중에는 산동지역에서 건너와

채소를 기른 화농(華農, 중국 농부)들이 있었다.

이들이 길러낸 채소를 파는 시장을 낸 것이 신포시장의 기원이다.

화농은 당시 조선에서는 기르지 않았던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을 들여왔고

이후 이 작물들이 전국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지금도 각종 반찬거리와

채소등을 주로 파는 시장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신포시장이라는 이름은 신포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포동은 바다로 통한 내가 있다고 해서 예부터

순우리말로 ‘터진개’ 또는 ‘탁포’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3년 개항 이후 이 마을은 터진개라는 이름을 한자로 써서

‘개포동’이라 불렀다.

1903년에 ‘새롭게 번창하는 포구’라는 뜻에서 신창동이라고 부르다가

일제에 의해 1914년 일본식 이름인 신정(新町)이 되었고,

해방 이후 우리식으로 지명을 고치면서 신포동으로 바꾸어 불렀다.

매립해서 새롭게 생긴 땅이 많은 지역이다.

 

 

 

 

신포국제시장은 국제라는 말이 들어가서 조금 색다른 시장인줄 알았는데

여느 전통재래시장과 다를바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들기도..

 

신포국제시장 이곳저곳 둘러보고 칼제비를 먹고 공갈빵을 사서

신포패션문화의 거리로 진행해서 자유공원을 찾았다.

 

 

신포패션문화의 거리에서 내리마루 문화쉼터로 진행해서 자유공원으로~

 

백범(白凡) 김구(金九) 동상(銅像)을 바라보는데 지난해 2025년 5월에 찾았던

서울 경교장(京橋莊) 생각이 문득 떠올랐고 이념 이데올로기는

잔인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김구(金九)는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아버지 김순영(金淳永)과

어머니 곽낙원(郭樂園)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 안동(安東), 자 연상(蓮上), 호 백범(白凡)이다.

어릴 적 이름은 창암(昌巖)이었고, 동학(東學)에 입교하면서 창수(昌洙)로 개명하였다가

이후 구(龜)를 거쳐 구(九)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같은 접주였던 이동엽(李東燁)의 공격을 받아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은거하며

고능선(高能善)에게 유학을 배웠다.

 

1919년 3·1운동 후 김구는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警務局長), 내무총장(內務總長)을 역임하였다.

또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창설하여 독립 전쟁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1926년에는 내각 수반인 국무령(國務領)에 선출되었다.

국무령이 된 김구는 노선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8년 백범일지白凡逸志의 집필을 시작하였고, 이시영(李始榮),

이동녕(李東寧)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조직하여 총재가 되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重章)이 추서되었다.

 

 

자유공원은 2019년 2월 동화마을 차이나타운과 함께 찾은 곳인데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세월 한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자유공원(自由公園)은 인천시 중구 송학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차이나타운 뒤편

응봉산 일대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구한말 개항의 물결 속에 당시 인천의 제물포항은 외국 열강의 자본과 사람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고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만국공원이 1888년 세워졌다.

서울 최초의 근대공원인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 세워진 근대공원이다.

 

자유공원에는 외국인 주재원들의 별장이 세워지는 등 이국의 공간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를 맞아 일본 신사가 들어선 ‘동공원’의 반대 방향이란 의미의

‘서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1957년,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공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며 인천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다.

 

도심 속 공원임에도 울창한 숲과 산책로가 있으며, 정상의 팔각정에서 바라보이는

경관은 인천항과 월미도가 눈앞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등

혼란스러운 근대 한국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자유공원 주변으로는 개화기 인천지역의 모습을 상징하는

옛 건물들이 복원되어 한국근대사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자유공원에서 지난해 2025년 12월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찾았던

월미산 전망대를 바라보는데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1880년 미국 아소칸주의 리틀록에서 출생하였으며

1893년 텍사스군사학교에 입학하였고 1899년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입하여

1903년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다.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공격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6.25전쟁 때는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였다.

하지만 중공군과 전면전을 두고 투루먼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해임되었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 지휘 아래 한, 미 해병대는

조선인민군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으로 인천에 상륙하여

6.25정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이다.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한, 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만에 점령을 끝냈다.

 

2단계로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단, 미국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마지막 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7일 정오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연오정(然吾亭)은 독립운동가 조훈(趙勳, 1886~1938)의 아들인 조길이 1960년

그의 부친의 뜻을 따라 지은 정자이며 조훈이 자유공원에 왔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에 많은 사람들이 맞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석정루(石汀樓)는 1966년에 삼화조선을 경영해 큰 돈을 벌었던

석정(石汀) 이후선(李厚善) 사장이 자유공원을 산책하면서

건강을 지켜준 보답으로 자신의 호 을 따서 지은 정자..

 

지난해 2025년 12월에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보았던 풍경을

7년만에 다시 찾은 자유공원에서 바라보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2025년 12월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찾았던 월미산 전망대는

50년 동안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는데 서해 바다 풍경과

낙조가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차이나타운은 자유공원과 맞닿아 있고 인천역 바로 앞에 있는데

7년 전 2019년 2월에 찾아보았던 곳이라 눈에 익숙했다.

 

차이나타운은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었고 1884년 제물포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治外法權)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형성된 곳이었다.

120년이 넘는 역사 동안 화교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붉은색으로 치장된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볼 때마다

마치 중국으로 여행을 온듯한 기분이 든다. 과

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중국 음식점들이 많다.

현재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은

초기 정착민들의 2세나 3세가 이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1세들이 지키고 있던 전통문화를 많이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남녀노소 사랑하는 짜장면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에서 지난해 2025년 12월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보았던

인천항 7부두 내 사일로(Silo·곡식저장시설)가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아파트 22층 높이인 48m, 길이 168m,

폭 31.5m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마눌님! 7년만에 다시 차이나타운을 찾았는데 백짜장 기억이 나나요~

 

 

차이나타운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엽고 예쁜 유하와

유준이가 보고 싶어서 아들내미 집으로~

 

메아리 / 김재성

 

흔들리는 나무 없으면

바람이 아무 소리 낼 수 없는 것처럼

 

먼 데서 바라봐주는 달 없으면

바다가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속 넓은 해바라기 없으면

아무도 태양을 봐주지 않는 것처럼

 

마주 앉던 너 없으니

내 목소리는 머무를 곳 없어

다시금 되돌아 온다.

 

신포국제시장은 국제라는 말이 들어가서 조금 색다른가 해서 찾았는데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바 없었고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은

7년 전 2019년 2월에 찾은 곳인데 변함이 없어 보였고

세월 한 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