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홍성군 여행(2026.2.28)홍주읍성 홍주성지성당 안회당

들산바람 2026. 3. 13. 13:02

홍성 홍주읍성(洪城 洪州邑城)은 충청남도 홍성군 오관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홍주읍성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진행해서 홍성 홍주읍성 감옥, 홍화문,

조양문, 홍주성지성당, 안회당, 여하정을 찾아보고

다시 홍주읍성 주차장으로 되돌아왔다.

 

●충청남도 홍성군 여행 코스(2026.2.28)..

 

죽도선착장 죽도

남당항 남당항해상분수공원 남당항네트어드벤처

남당노을전망대

홍성스카이타워

한용운선생 생가지

김좌진장군 생가지

홍주읍성 홍주성지성당 안회당

 

홍성 홍주읍성 감옥(洪城 洪州邑城 監獄)..

 

홍성 홍주읍성 감옥(洪城 洪州邑城 監獄)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순교터..

 

 

홍성 홍주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

 

저잣거리에 홍주성지성당이 있다.

 

홍성 홍주읍성 감옥은 천주교 박해기간 동안(신해박해, 1791~1869)에

홍주의 순교자 212명 중 최고로 많은 113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이다.

홍주읍성 감옥에서는 교수형이 제일 많이 처해졌는데 

순교자들의 옥중 생활은 너무 비참했다.

최고의 고통은 굶주림과 목마름이었고, 장독과 전염병,

포졸들의 괴롭힘은 생명을 단축시켰다.

 

"저를 위해 온 몸에 매를 맞고, 제 구원을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이제는 제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얼고 있는 이 몸을 바칩니다."

이곳에서 순교한 충청도 최초의 순교자 원시장(베드로)의

마지막 신앙 고백이다.

 

3개월에 걸친 매질에도 죽지 않자 얼려 죽인 것이다.

 

신해박해(辛亥迫害)는 1791년(신해년, 정조 15년) 조선 최초의 

천주교에 대한 박해 사건이다. 

신해교난(辛亥敎難) 또는 신해사옥(辛亥邪獄), 

진산 사건(珍山事件)이라고도 부른다. 

전라도 진산의 선비 윤지충이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고자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른후 제사를 폐함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일고 당쟁으로까지 비화됨에 따라 

사회도덕을 문란하게 한다는 죄명하에 그의 행위에 동조한 

외사촌 권상연과 함께 참수당하였다.

 

신해박해를 필두로 하여 시작된 탄압은 신유박해, 을해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가 자행되어 수많은 천주교 성직자와 천주교도들이 '천주학 죄인' 

또는 '천주학 쟁이'라고 비난받으며 순교의 피를 흘리는 불행사로 이어졌다.

 

홍성 홍주읍성 감옥을 나와서 홍화문으로~

 

 

홍성 홍주읍성(洪城 洪州邑城)은 충청남도 홍성군 오관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 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홍성 홍주읍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洪化門(홍화문)..

 

 

홍주성 수성비(洪州城 修城碑)는 1824(순조 24) 황폐된 홍주읍성

보수 완공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며 조양문 앞에 있었던 것을

홍화문 앞으로 옮겨 놓았다.

 

 

 

홍주읍성 성곽 우측은 주차장..

 

홍주읍성 성곽 좌측에 있는 홍주읍성 감옥으로 되돌아가서 조양문으로 진행~

 

조양문(朝陽門)은 홍주읍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

고종조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동서남북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는데,

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하였으며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이었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 때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형되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보인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홍주성지성당(洪州聖地聖堂)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저젓거리에 있으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성지에 위치하고 있다.

 

홍주순교성지(洪州殉敎聖地)는 212명의 신앙 선조들이 목숨 바쳐 순교한

전국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탄생한 곳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까지 포함한다면 1,000여 명이 넘게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홍주순교성지(洪州殉敎聖地)는 목사의 동헌, 교수형터(감옥), 홍주진영,

저잣거리, 참수터, 생매장터, 등 총 6곳을 도보순례 할 수 있는 성지로서

심문과 고문, 죽음의 형장까지 순교자들의 신앙의 길을

깊이 묵상하며 걸을 수 있다.

 

홍주순교성지(洪州殉敎聖地)는 홍성역에서 홍주성지까지 도보로 30분 거리이며

전국 성지 중 기차역에서 제일 가까운 성지이다.

 

 

홍주성지성당에서 잠시 기도와 묵상을 하고 안회당으로~

 

소녀상 모욕하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처벌을 했으면..

 

안회당(安懷堂)과 여하정(余何亭)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위치하고 있고 홍주읍성 내 홍성군청 뒤에 있다.

 

 

안회당(安懷堂)은 조선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관청..

 

 

安懷堂(안회당)..

 

 

홍주목사의 동헌 터는 순교 선조들의 신앙심이 깊게 베여 있는 곳..

 

 

여하정(余何亭)은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

 

 

안회당(安懷堂)과 여하정(余何亭)은 홍성군청 뒤에 있다.

 

 

홍주읍성에서 충청남도 홍성군 여행을 모두 마치고 저녁을 먹고 귀경을 했는데

홍주순교성지순례와 홍주성지성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해서 

나이롱 신자는 조금 면한 기분이 들기도~

 

강(江) / 윤주선

 

천둥 치던 날

컴컴한 세상에 와서

낮은 곳으로만 흘렀네

 

깊은 산속 나무를 만나고

이름 없는 들풀 곁에 쉬며

낮은 곳으로 흘렀네

 

인내로 흐르지 않고

개울, 시냇물 거치지 않고

어찌 큰 강에 다다를 수 있으랴

 

상처 입은 수초를 품고

둥둥 떠도는 강물이여

고단하고 서러워 마라

 

한 점 빗방울이 강물을 이루는 것

그것이 삶이다

나, 넓고 고요한 강이 되기를 기도하노라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홍주읍성을 찾아서 홍주순교성지순례를 했는데

많은 천주교 순교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땅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숙연함이 들었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