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립 장군 묘(申砬 將軍 墓)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 산15-1번지에 있으며
경강선 곤지암역 2번출입구에서 가깝다.

신립 장군 재실..



곤지암(昆池岩)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화강암 바위로,
신립 장군의 묘소와 얽힌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립 장군이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달천에 몸을 던져
순국한 후 시신을 못 찾고 그의 옥관자(玉貫子)만을 찾아서
지금의 묘가 있는 신대리 산1번지에 산소를 쓰려고 하였으나,
묘자리가 쥐혈이고 묘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묘를 쓸 수 없다고 하므로,
상여가 대쌍령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있었다.
그날 밤 광풍이 불고 벼락이 고양이 바위를 쳐서 두 동강이 나고
그 앞에 넓은 연못이 생겼는데 그 바위가 없어져서
묘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벼락을 맞고 갈라진 바위틈에서 향나무가 나와 자라서
지금도 300년이 넘도록 잘 자라고 있다고 전한다.
이 향나무는 1985년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신완 신도비(申玩 神道碑)는 1894년(고종 31)에 세웠고
비문(碑文)은 송환기(宋煥箕)가 지었고,
글씨는 김영수(金永壽)가 썼다.
신완(申玩, 1646~1707)의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공헌(公獻)이며,
호는 경암(絅菴)이다. 1672년(현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남인(南人) 권대운(權大運) 등의
죄과를 논박하였으며, 벼슬은 강양도(江襄道)관찰사, 한성부판윤,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에 이르렀다.
1703년 영의정으로 평천군(平川君)에 봉해졌다가
1706년 앞서 세자(世子) 모해설이 있을 당시의 참국(參鞠) 대신으로서
사건 규명을 잘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파직, 다시 세자(景宗)를
시해하려 했다는 탄핵을 받고 대죄(待罪) 중에 병사하였다.



맨 앞에 있는 묘는 신립 장군의 6대손으로 이조참판을 지낸 신방의 묘..
두 번째 묘는 신립 장군의 5대손 신방의 아버지 신성하의 묘
세 번째 묘는 신립 장군의 묘..

신립장군묘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 산15-1번지에 있다.
부인 전주 최씨와의 합장묘로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로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 1쌍씩 배열되어 있다.
묘비는 묘의 왼쪽에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신익상이 글씨를 써서 숙종 29년(1703)에 세운 것이다.
1986년 9월 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되었다.

신립(申砬, 1546.11.16~ 1592.6.7)은 조선의 무신이다.
신숭겸의 후손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입지(立之)이다.
신립(申砬)은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겸비변랑이 되었다.
1583년 온성부사로 부임해 북변에 침입해온 니탕개(尼湯介)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1590년(선조 23년) 여름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에 보직되고,
이듬해 한성부 판윤을 거쳐,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되어 싸움터로 떠날 때,
선조(宣祖)가 검(劍)을 하사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신립은 충주에서 방어진을 갖추고 왜적을 차단하고자 하였으나
도착한지 불과 사흘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신립은 부하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탄금대에 진을 치고 기마전술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왜군이 몰래 침입해 온 줄도 모르고 방심하다가 충주성을 빼앗겼고,
마을에서 불길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말을 달려 반격에 나섰으나 참패하였다.
그는 항복을 하는 대신에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고,
부장이였던 김여물(金汝物) 역시 따라 투신 자결하였다.
이때 장군의 나이는 향년 47세였다.

신립 장군 비문(申砬 將軍 碑文)..
贈領議政平陽府院君行漢城府判尹兼八道都巡邊使申公砬之墓 /
증 영의정 평양부원군 행 한성부판윤 겸 팔도도순변사 신공립지묘
貞敬夫人全州崔氏祔左 / 정경부인 전주 최씨 부좌
贈(증)은 사후에 받은 관직..
行(행)은 생전에 받은 관직..
貞敬夫人(정경부인)은 조선 시대 정일품 및 종일품 문무관의 정실부인에게 주어지던
외명부 봉작 작위(爵位)..
祔左(부좌)는 부부 합장할 때 남편의 왼쪽에 묻었다는 뜻..

신립장군묘 위에 가족묘 2기가 더 있다.

맨 앞은 입구에 있는 신도비 주인공 신완의 묘..
뒤는 신준의 묘..

사모곡 / 김왕노
나는 어머니가 너울너울 저승에 가며
이 땅에 가만히 방생하고 간 물고기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 지느러미로 자라
오늘도 어머니 홀로 북망산천 갈 때
선소리 앞세워 갔던 산비둘기 우는 길
끝없이 헤엄쳐갔다가 돌아올 리 없다.
앵자지맥 산행 때 신립장군묘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보고
마음속으로 꼭 한 번 찾아보아야지 했었는데
곤지암 유래가 신립장군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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