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2020.3.1)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는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

들산바람 2020. 3. 6. 00:56

 

 

북한산 둘레길을 돌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를 찾아 보고 

오후에는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서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를 찾았다~

북한산우이역은 지난주에 사패산에서 도봉산 연계산행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서 전철을 탔던 곳인데 3일만에 다시 찾았다~

 

 

 

 

왕실묘역길 구간은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를 나와서

차도를 건너 좌측 왕실묘역으로 진행~

 

 

 

 

 

 

 

 

회양목은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회양목과의 상록관목으로 작은가지는 녹색이고 네모지며 털이 있다.

잎은 마주달리고 두꺼우며 타원형이고 끝이 둥글거나 오목하다.

중륵의 하부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뒤로 젖혀지고 잎자루에 털이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으로 구분되고 4~5에 노란색으로 핀다.

암수꽃이 몇 개씩 모여달리며 중앙에 암꽃이 있다.

수꽃은 보통 3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 흔적이 있다.

암꽃은 수꽃과 더불어 꽃잎이 없고 1개의 암술이 있으며 암술머리는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로 타원형이고 끝이 딱딱하게 된 암술머리가 있으며 6~7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회양목은 지름이 25cm 정도 자랄려면 600~700년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자람이 극히 더디다.

회양목은 목질이 단단하고 균일하여 목판활자, 도장, 호패, 표찰 등을 만드는데 이용되었고

 요즘은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회양목(淮陽木)은 석회암지대가 발달된 북한 강원도 회양(陽)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회양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회양목은 영어로 Korean box tree이며,

학명은 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Nakai 한국이 원산지이다.

 

Nakai는 일본의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1.9~1952)인데

우리나라 자생 식물에 많은 학명을 붙였다.

도쿄대학 교수, 고이시카와(小石川)식물원장, 일본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자생 식물을 정리하고 소개하면서

많은 식물의 학명에 그의 성인  Nakai가 명명자로 등재되어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성 외에도 일본에서 유명한 인물들 이름을 한국 자생 식물들 학명에 넣었다.

1927년에 조선삼림식물편 총 7권을 간행하였으며, 그 공로로 일본학사원 계공작 기념상을 받았다.

 

 

 

 

도봉산을 바라보는데 안개 같기도 하고 미세먼지 같기도 한데 뿌옇다..

산행 내내 맑은 하늘 보기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동통로 앞 북한산 둘레길 중에 왕실묘역길 들머리가 있다~

 

 

 

 

왕실묘역길을 따라서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로~

 

 

 

 

 

 

 

 

 

 

왕실묘역길에서 도봉옛길은 등로가 순하고 주위 경치가 아름다웠는데

마눌님과 함께 다시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강쥐가 들바람을 보고 따라오라고 하고 있다~

 

 

 

 

 

 

 

 

 

 

왕실묘역길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묘들이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다~

 

 

 

 

 

 

원당샘공원..

 

 

 

 

 

 

원당샘은 대장균 등이 검출되어서 음용 부적합..

 

 

 

 

 

 

 

 

 

 

김병로(金炳魯 1887.12.15~1964.1.13)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서 출생,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가인(街人)이다.

18세 때 담양 일신학교에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산술과 서양사를 배웠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용추사에서 최익현의 열변을 듣고

동지들을 모아 순창읍 일인보좌청을 습격하였다.

같은 해 창흥학교를 설립, 신문학을 가르쳤으며 1913년에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1919년에 변호사를 개업하였고 광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등

관련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았으며 항일운동가들의 변호를 자처했다.

8.15광북 후 1948년에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하였으며

재임 9년 3개월 동안 법관들에서 청렴을 강조 하며

사법부 밖에서 오는 모든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 기초를 다졌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모든 정치하는 사람들은 두루마리를 입고 직접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시고

절제와 청렴의 표상이신 가인 김병로를 본받아야 한다~

 

 

 

 

 

 

 

연산군묘는 원당샘 옆에 있다..

 

 

 

 

 

 

 

수령이 약 550년된 방학동 은행나무..

 

 

 

 

 

수령이 약 550년된 방학동 은행나무를 바라보는데 용문산 아래에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

천태산 아래에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 적갑산 아래에 있는 수종사 은행나무가

문뜩 떠올랐는데 지난 산행들이 아련히 스쳤다~

 

 

 

 

연산군처럼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등장했던 인물도 드문데 연산군묘는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2017년 4월 26일 천마산 산행을 하면서 찾았던 광해군묘와 overla되었는데 둘은 평가가 전혀 다르다..

요즘 학계에서는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폐위된 광해군(光海君)은 정쟁(政爭)에 희생되었다고 

다시 재평가(再評價)를 하고 있는데 지금이야 말로 부국강병(富國強兵)의 기틀을 다진

광해군 같은 인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조와 선조는 조선 왕들 중에서 가장 무능한 왕..

 

 

 

 

 

 

 

 

 

 

 

 

 

쌍분(雙墳)의 경우에는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연산군묘(燕山君墓)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성종의 원자인 연산군은 1506년 9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왕이되어 연산군으로 강봉되고

강화도 교동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11월 31세에 병사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어 연산군이 죽은 뒤

묘를 강화도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위치)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연산군(燕山君)은 1476년(성종 7) 11월 7일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에 오른 윤씨였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의 첫 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妃)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이융(李 漋)이고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1년 후 생모인 윤씨가 사망하게된 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후 방치된

윤씨의 능묘 천장(遷葬)을 두고 삼사(사헌부, 사간부, 홍문관)와 대립하였다. 

재위 4년인 1498년 7월 김일손(金馹孫)이 작성한 사초의 내용이 세조를 바판하고

붕당을 만들어 국사를 어지럽게 했다는 조의제문(弔義帝文 : 조선 성종 때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빗대어 지은 글. 항우가 초나라 회왕인 

의제를 죽인 고사를 비유한 것)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문제 삼아 이미 죽은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많은 신진 사류(士類)와 삼사에 속한

대간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조선시대 최초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키게하였다.

이 사건으로 연산군과 갈등을 빚으며 왕권을 견제했던 삼사의 역활은 축소되었다.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은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인 사치와

사냥을 즐겼고 국고의 사정은 나빠졌다.

1504년에는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경기도관찰사를 지내던 홍귀달이 숙청되었다.

이 사건은 확되대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문제로 번졌다.

성종의 후궁인 정씨(鄭氏), 엄씨(嚴氏)의 모함으로 윤씨가 내쫓겨 사사(死)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모 인수대비(仁粹大妃)를 구타하여 죽게 하고, 윤씨의 폐비에 찬성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 김굉필(金宏弼) 등 수 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등을

부관참시하는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켰다.

한편, 각 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등을 파견해서 미녀와 양마를 구해오게 하고,

성균관의 학생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놀이터로 삼는 등 횡음(荒淫)에 빠졌다.

경연(經筵)을 없애 학문을 마다하였고, 사간원(司諫院)을 폐지해서 언로(言路)를 막는 등

그 실정(失政)은 극에 달하였다.

 

 

 

 

 

1506년(중종 1) 훈구파를 중심으로 연산군을 폐위하려는 정변이 계획되었고

 이에 이조참판 성희안(成希顔), 중추부지사 박원종(朴元宗)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켰으며 연산군은 폐왕이 되어 강화도 교동(桐)에 유배되었다.

실록에는 연산군이 강봉되어 폐위된지 두 달만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치세는 개국 100년의 조선조에 한 시대의 획을 긋게 하여, 이후 50년은 사화(士禍)라는

유혈극이 잇따라 일어나 선조 이후 정치 세력들이 붕당(朋黨)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파 대립으로 인해 국력은 소진되었으며 임진, 병자 등의 국난으로 국운은 쇠퇴하였다.

 

 

 

 

아무리 부부지간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 같았으면 치를 떨고 연산군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텐데

폐비 거창군부인 신씨(居昌郡夫人 愼氏)는 마음이 참 곱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연산군묘역에서 의정공주묘역로~

 

 

 

 

 

 

 

 

 

 

 

 

 

무수골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묘역 옆으로 진행~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묘역은 서울유형문화재 제50호..

 

 

 

 

 

 

 

안맹담 신도비(安孟聃 神道碑)..

 

 

 

 

좌측은 양효공 안맹담묘(良孝公 安孟聃墓), 우측은 정의공주묘(貞懿公主)..

 

 

 

 

양효공 안맹담묘(良孝公 安孟聃墓 1415~1462)..

 

 

 

 

정의공주(貞懿公主 : ?~1477년, 성종 8)는 세종의 둘째 딸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웠는데 역산(曆算)에 능하였고 세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과 토착이 잘풀리지 않아

여러 대군들과 공주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는데 공주가 이를 풀어 세종의 칭찬을 듣고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세종이 창제된 훈민정음을 공주에게 주어 민간에서 시험해보도록 하자,

공주는 그결과를 세종께 바쳤다고 전해진다.

정의공주는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

안맹담도 평소 불경을 읽고 살생을 싫어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는 등

공주 부부는 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공주는 1469년(예종 1)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죽은 남편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정의공주 간행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은 보물 제966호로 지정되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정의공주묘를 찬찬히 둘러보고 무수골로~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에서 시작해서 연산군묘 정의공주묘 무수골을 지나서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마무리~

 

 

 

 

 

 

 

 

 

 

 

 

 

사천목씨와 방학동 선영 및 재실..

 

 

 

 

 

 

 

 

 

 

 

 

 

 

 

 

 

 

 

 

 

 

 

 

 

 

 

 

 

 

 

포도밭 규모가 꽤 큰 것 같았는데 개발이 많이 되었다..

 

 

 

 

등로 양 옆에는 포도나무 대신에 사철나무가..

 

 

 

 

 

 

 

 

 

 

 

 

 

 

 

 

바가지약수터..

 

 

 

 

 

 

 

 

 

 

 

 

 

쌍둥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전망이 좋은데 미세먼지 때문에 아쉬움이 들었다..

 

 

 

 

 

 

 

속세는 미세먼지에 완전히 갇혔는데 답답한 느낌도 들고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한산도 미세먼지에 갇히기는 마찬가지..

 

 

 

 

미세먼지가 심해서 백운대와 인수봉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

 

 

 

 

3일 전에 찾았던 도봉산을 바라보는데 뿌옇다..

 

 

 

 

소 귀를 닮았다는 우이암..

 

 

 

 

 

 

 

도봉산 총사령부도 머세먼지를 뒤집어쓰기는 마찬가지..

 

 

 

 

세종이 아들 영해군묘(寧海君墓)를 찾아 왔다가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해서 이름이 유래된 무수골(無愁谷)을 바라보는데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

 

 

 

 

들바람!! 그동안 궁금했던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를 찾아보는데

가을에 다시 한번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ㅎ

 

 

 

 

 

 

 

 

 

 

 

 

 

 

 

 

 

 

 

 

 

 

 

 

 

 

 

 

 

 

 

 

 

 

 

 

 

 

 

 

세일교를 건너서~

 

 

 

 

 

 

 

 

 

 

물 좋고 풍광이 좋아서 아무런 근심이 없는 무수골(無愁谷)..

 

 

 

 

 

 

 

 

 

 

들바람!! 신종 코르나바이러스보다는 미세먼지가 났지~ㅎ

 

 

 

 

 

 

 

윗무수골..

 

 

 

 

 

 

 

 

 

 

 

 

 

 

 

 

유양 신도비(柳壤 神道碑)..

 

 

 

 

증영의정진주유공휘양문집시비(贈領議政晉州柳公諱壤文集詩碑)..

 

 

 

 

진주유씨묘역(晉州柳氏墓域)..

 

 

 

 

 

 

 

 

 

 

 

 

 

 

 

 

 

 

 

 

 

 

 

 

 

메타세퀘이아는 화석나무..

 

 

 

 

 

 

 

도봉사(道峰寺)는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의 사찰..

 

 

 

 

포대화상(布袋和尙 : 미상~916년)은 중국 명주 봉화현 태생의 선승(禪僧)으로

이름은 계차(契此)이다.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사람들에게 기부 받은 물건을 담은

포대를 메고 거리를 배회해서 포대화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대화상은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걸식하는 고아, 굶주린 이들을 위해

종일 탁발을 하고 그것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줬다.

그에게 물건을 얻은 가난한 이들은 그때부터 재복이 일어나 가난을 면하고,

음식을 얻어먹은 이들은 먹을 복이 생겨 굶주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중국 민간에서는 혜비수(惠比壽), 대흑천(大黑天), 비사문천(天),

수노인(壽老人), 복록수(福祿壽), 변재천(弁才天)더불어 칠복신(七福神)으로 받들어진다.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소신만리유) 고고히 몸은 만 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청목도인소)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라.

問路白雲頭(문로백인두)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 천백의 몸으로 나누어

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時人自不識(시인자불지)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罣碍(허공무가애)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遍宇宙(전개편우주) 열어 펼치면 우주에 두루하고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 오무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배가 출출해서 점심 공양을 하고 싶어서 도봉사를 찾았는데 신종 코르나바이러스 때문에

신자들도 안보였고 적막감이 돌았는데 당분간 점심 공양을 안하는 것 같았다~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도봉사에서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을 극락정사(極樂精舍)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름다운 생강나무 꽃이 필 것 같다~

 

 

 

 

오리나무에 관한 유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길가에 오리(五里, 2km)마다 심은 나무라고 해서..

오리나무는 오리(五里, 2km) 안에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해서..

들바람은 후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마음에 드는데 지금은 귀한 나무~

 

 

 

 

道峯山能園寺(도봉산능원사)..

 

 

 

 

도봉산 능원사도 신종 코르나바이러스 때문에 적막감이 돌았다..

 

 

 

 

도봉산 능원사는 황금사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티가 나는 것 같기도~

 

 

 

 

 

 

 

도봉산 능원사에서는 범종각(梵鐘閣)을 법음각(法音閣)이라고 했다.

 

 

 

 

도봉산 능원사에서는 대웅전(大雄殿)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 했는데

미륵전(彌勒殿)과 같고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을 모신 전각(殿閣)..

 

 

 

 

 

 

 

 

 

 

 

 

 

 

 

 

2019년 4월 충남 금산에 위치한 진악산 산행을 마치고 인삼튀김과 금산마꼴리를 마시고 싶었는데

인삼튀김집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쉬움이 많아었다..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마꼴리와 인삼튀김을 먹는데 진악산도 생각났고

입 안에 도는 쌉싸름한 인삼의 특유한 맛이 참 좋았다~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부모님을 찾아뵐려고 했는데 아버님께서 지금은 올 때가 아니라고 하셔서

신종 코르나바이러스가 조금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북한산 도봉산 둘레길 개념도..

 

 

 

 

도봉산 지도..

 

 

 

 

도봉산 산행을 전철역에서 시작해서 전철역에서 마쳤는데 등로가 순했다~

 

 

 

 

왕실묘역길을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에서 시작~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는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도봉산 둘레길 날머리는 도봉산역..

 

 

 

 

코스도 짧고 소요 시간도 짧았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본 일이 없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왕실묘역 구간에 위치한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는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2017년 4월 천마산 산행을 하면서 찾았던 광해군묘와 overlap되기도 했던 산행~

역사탐방하는 느낌도 들었고 미세먼지 때문에 조금 아쉬움도 들었던 산행~

 

언제 : 2020년 3월 1일

어디 :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황실묘역구간 원당샘공원-방학동 은행나무-연산군묘-정의공주묘-

사천목씨와 방학동 선영 및 재실-방학동길 포도밭-바가지약수터-쌍둥이 전망대-세일교-

도봉옛 길무수골-윗무수골-유양 신도비-증영의정진주유공휘양문집시비-

전주유씨묘역-도봉사-능원사-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산역산

산행 시간 : 9시 18분~12시 46분

날씨 : 흐리고 미세먼지 자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