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산 입암산(2018.3.27)역사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던 산행~

들산바람 2018. 4. 7. 08:40

 

 

영인산과 김옥균선생유허지를 찾기 위해서 영등포역에서 06시 30분 열차를 타고 온양온천역에 7시 50분에 도착~

전철도 온양온천역으로 운행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서 열차를 이용~

1시간 20분 소요, 운임은 6,600원..

 

 

 

 

아산시에 위치한 김옥균선행 유허(묘)와 영인산은 온양온천역 1번출구를 나와 광장을 지나서

좌측에 있는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에서 인주행 버스를 타고

영인농협버스정류장에 내려야 한다~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에서 인주행 600, 601, 610, 611, 612, 613, 614번버스가 

영인농협과 공세리성당(인주파출소)으로 운행을 하는데 배차 간격이 길다..

 

조금 서둘렀으면 8시 05분에 도착한 인주행 600번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화장실에도 가고 점심 때 먹을 일용할양식을 준비하느라 노쳤다..

 

꼼지락 거리는 덕분에 45분 정도 기다려서 8시 50분에 도착한 인주행 610번버스를 타고

영인산과 김옥균선행 유허를 찾기 위해 영인농협버스정류장으로~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에서 8시 50분에 출발한 610번버스는 9시 16분에 영인농협버스정류장에 도착..

26분 정도 소요..

 

 

 

 

영인농협버스정류장에서 먼저 김옥균선생 유허(묘)를 찾아보기 위해서

지나온 방향 30여m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영인산 입구..

 

 

 

 

이정표에 김옥균선생 유허 200m라고 쓰여 있는데 1km는 될 것 같았다..

영인산 입구는 영인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영인산 주차장인데 먼저 우측으로 진행을 해서 김옥균선행 유허를 찾아보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영인산 주차장을 지나서 영인산휴양림입구로~

 

 

 

 

김옥균선생 유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고개를 넘자마자 있다~

 

 

 

 

아산시 아산면 영인리에 위치한 갑신정변(甲申政變 : 1884.12.4~6)의 주인공

김옥균선행 유허(金玉均先生遺墟)..

 

 

 

 

김옥균(金玉均 : 1851~1891)은 1851년(철종 2)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김병태였으며 어머니는 은진 송씨로 당대 문벌가 출신이었다.

그의 부친은 충남 천안으로 이주하여 작은 서당을 열어 학동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김옥균이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집안에 알려지자 6세 때 5촌 당숙이자 당시 좌찬성을 지내고 있던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1861년 양부인 김병기가 강릉부사로 부임하자 강릉에서 학업을 쌓으며 6년간 머물렀는데

이때 이율곡 학통의 영향을 받았다.

 

1866년 다시 서울로 이주한 김옥균은 북촌 양반가에서 지내다 박영교의 소개로 1859년 박규수를 만났다.

김옥균은 그의 문하에서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게되었다.

특히 개화파였던 한의원 유대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외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중국을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역관 오경석,

개화승 이동인에게 영향을 받으며 그들과 교우가 두터웠다.

1872년(고종 9) 22세 때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료로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김옥균은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충의계(忠義契)라는 개화파 조직을 만들었는데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 명문가의 자재들이 가담을 하였다.

1881년(고종 18) 김옥균은 고종의 허락을 얻어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을 직접 시찰하였다.

다음해 다시 수신사로 박영효 일행의 고문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이때 김옥균은 조선을 속국으로 생각하는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치욕적이라고 비판하였고 일본의 힘을 빌려 조선의 개혁을 꾀할 결심을 하였다.

 

1883년 6월 서재필 등 청년들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과 함께

국가 개혁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당시 김옥균은 청나라 새력을 배경으로 하는 민씨 일파의 세도정치가 지나치게 수구적인 데 불만을 품고

1884년 12월 4일 우정국(郵政局) 청사의 낙성식을 계기로 거사를 감행하여

한규직 등 수구파를 제거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틑날 조직된 새내각의 호조참판으로 국가재정의 실권을 잡았으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자 일본으로 망명,

10년간 일본 각지를 방랑한 후 1894년(고종 31)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되었다.

 

갑신정변(甲申政變)는 문벌의 폐지, 만인평등 등 낡은 왕정(王政)을 개혁하려는 혁명적 의도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법무대신 서광범과 총리대신 김흥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고,

1910년(융희 4)에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기화근사(箕和近事), 치도약론(治道略論), 갑신일록(甲申日錄: 手記) 등이 있다.

 

 

 

 

 

 

 

김옥균은 일본을 떠돌다가 중국 상해로 건너와서 민씨 정권이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되고

시신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김옥균을 존경하던 한 일본인이 효시(梟示)된 머리를 일본 도쿄의 청산외인묘지에 묻고 비를 세웠는데,

1914년 9월 11일 옷가지와 머리카락을 이곳으로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했다.

 

 

 

 

김옥균의 주위에는 일찍부터 당시 명문 귀족 출신 수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철종의 사위인 금릉위 박영효와 당시 영의정이던 홍순목의 둘째 아들 홍영식,

고종의 외척이며 여흥 민씨 가문의 총아인 민영익 그리고 서광범,

서재필 등이 옥균이 교류하던 양반 출신 청년 지식인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김옥균은 1870년대부터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개화사상을 배우게 되었고,

이들이 훗날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었다.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난 갑신정변(甲申政變)은 비록 3일 동안이었지만

정변에 가담한 주역들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척들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개화파의 중심 인물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9명이

일본으로 망명함으로써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고 그들 중 몇몇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봉균 이희정 신중모 이창규 등은 모반과 대역부도의 죄로 지금의 시청 부근인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참되었고, 이윤상과 이점돌은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으며,

차홍식 서재창 남홍철 고흥종 최영식은 불고지죄로 서소문 밖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옥균의 동생 김각균은 천안에 살다가 한강을 건너 서울로 들어오다가

형이 정변을 일으켜 실패하고 도망쳤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날로 경북 칠곡으로 도망쳐 숨어 살다가 어사 조병로에게 붙잡혀 대구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김옥균의 아버지 김병기는 당시 눈병을 얻어 장님이 되었는데, 천안 감옥에서 6~7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연좌제에 의해 효수되었고, 어머니 송씨 부인은 누이와 함께 음독 자살하였다.

김옥균의 처와 젖먹이 딸은 양가파연(養家破緣) 처분으로 죽음은 모면하였지만

관비가 되어 온갖 고생을 하다가 죽었다.

 

단 한 사람 예외가 김옥균의 누이 동생인데 그녀는 위계결혼(僞計結婚)으로

포리(捕吏)의 눈을 속여 타고난 수명을 다하였다.

갑신정변 당시 기계국의 주사였던 남편 송병의와 함께 서울에서 살던 김옥균의 누이동생

김균은 남편과 함께 충청군 옥산면으로 몸을 피하였다.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여동생은 포승의 치욕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히고 비상을 마셨다.

그녀가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소문이 인근에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김옥균의 누이동생 김균은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남편은 아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상처했다는 것을 알리고 시신없는 초상을 치렀다.

정부는 물론이고 일가친척들까지도 김옥균의 누이동생 김균이 죽었음을 믿었고

김균은 곧바로 영천의 신녕으로 몸을 숨겼다.

 

1년이 지난 뒤 송씨는 새장가를었다.

혼례날 신부는 유난히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며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송씨는 천안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누구도 송씨가 새장가을 든 여인이

김옥균의 누이인 김균이라는 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녀는 충청남도 서천군 동면 판교리에서 60여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그것은 당시 혼인 풍습이 여자는 시집을 가면 대문 밖을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18년 박영효가 일본에서 김옥균의 머리카락 몇 올을 가지고 돌아와 김옥균의 무덤을 쓸 때의 일이다.

박영효가 제문을 읽다가 목이 메어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데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무덤 앞으로 다가오더니 무덤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하였다.

 바로 김옥균의 누이인 김균이었다.

 

 

 

 

 

 

 

한편, 박영효의 형인 박영교와 아버지인 참판 박원양은 자살을 택했는데,

그는 죽기 전에 10살 난 영교의 아들을 먼저 죽였다.

박영효의 둘째 아들인 진사 박영호는 변성명을 하고 전북 진안의 산중에 숨어 살어 있다가

끝난 후 하산하여 죽임을 면하였다.

 

홍영식의 아버지로 임오군란무렵 영의정을 지냈던 홍순목은 "역적으로 지금껏 자식을 기르면서 몰랐으니

만 번을 죽더라도 어떻게 속죄를 하겠는가" 하고 탄식한 뒤 홍영식의 10살이 채 안 된 아들을 보며

"이 종자를 어떻게 남겨두겠는가" 하고는 독살하고 대궐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한 다음 독약을 마셨다.

홍영식의 처 한씨도 홍영식의 형 홍만식의 권고를 받고 자살을 하였다. 

 

 

 

 

서재필의 아버지인 진사 서광언은 아내와 함께 자결했으며, 서재필의 처와 아들은 독사하였다.

형 서재형은 은진감옥에서 죽었고, 동생인 서창필은 처형되었으며, 재우는 훗날 사면되었다.

 

서광범의 아버지인 서상익은 연루된 죄로 7~8년간 유배되었지만 무슨 이유로 죄를 받는지초차몰랐다.

서광범의 아내 김씨는 끝까지 절개를 지켜 갑오년 이후 서광범과 다시 살게되었다.

 

유대치는 제자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보고 시기가 너무 이르다며 만류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김옥균 등이 도망을 치자 그들과 함께 두었던

바둑판을 도끼로 쪼개어 아궁이로 밀어 넣은 다음 수표교에 있는 약국에서 행방을 감추었다.

그 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들리는 말로는 오대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고 한다.

 

갑신정변의 행동대장격이던 신중모는 참형되었고, 윤영관은 보부상들에게 잡혀 참살되었으며,

박재경은 수표교에서, 오감은 관철교 부근에서 일반 시민에게 붙잡혀 참살되었다.

 

 

 

 

한 집안에 역적이 나면 삼족이 죄가 있건 없건 연루되어 풍비박산이 되는 것이 조선시대에 비극적인 형벌이었다.

개화로 인하여 파생한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를 목격하고도 당시 사람들은 동정은 고사하고

개화잡귀들을 씨를 말려야 한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백성들은 3일천하로 끝이난 갑신정변을 양반들간의 싸움으로만 생각하고 호응이 없었는데 

만약 성공을 하였더라면 지금쯤 세상이 많이 변해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김옥균선생 유허(묘)에서 영인산 산행을 하기 위해서 다시 삼거리로~

 

 

 

 

다시 되돌아온 삼거리에서 영인산 산행을 하기 위해서 영인산 주차장 앞으로 진행해서 좌측으로~

 

 

 

 

영인산 주차장은 넓고 화장실도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는데

영인산휴양림 입구는 좌측으로~

 

 

 

 

영인산휴양림 입구는 좌측 영인산로를 따라서~

 

 

 

 

영인산휴양림 입구..

 

 

 

 

영인산 들머리는 영인산휴양림 입간판 맞은편 플랭카드 좌측에 있다~

 

 

 

 

들바람!! 전날 구름산 산행은 몸풀기 산행이지~ㅎ

 

 

 

 

영인산휴양림 입간판 맞은편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날씨가 초봄치고는 더운 것 같았다~

 

 

 

 

김옥균선생묘보다도 20배는 될 것처럼 보이는 봉분을 바라보는데 

김옥균선생묘는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이..

 

 

 

 

 

 

 

영인산 진달래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등로로~

 

 

 

 

 

 

 

 

 

 

요즘 여기저기 눈에 제일 많이 띄는 것이 개암나무인데 제철을 만났다~

 

 

 

 

 

 

 

 

 

 

영인산 산행을 하면서 많은 산소를 보았는데 개인 소유가 아닐까 생각이..

 

 

 

 

 

 

 

갈림길에서 아산시(牙山市)의 유래가 된 어금니바위를 먼저 찾아보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상투봉으로~

 

 

 

 

상투봉 갈림길에서 어금니바위까지 왕복 1.4km인데 짧지 않은 거리..

 

 

 

 

갈림길에서 등로가 어금니바위로 한참 동안 내리막인데 내려간만큼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상투봉으로 진행하는데 아산로에서 차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들렸다..

 

 

 

 

어금니바위에 도착해서 어느 곳에서 본 모습이 어금니와 닯았다고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금니바위는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면 아산시와 염치읍 송곡리 등의 경계가 되는 영인산 북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아산(牙山市)시 이름은 이 바위의 어금니 '아(牙)'자를 따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이 바위를 아기 업은 바위, 부아암(負兒岩)이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마치 아이를 업은 형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저주 받은 장자집 며느리의 설화가 전해진다.

 

산 아래 염치읍 송곡리에 장자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는데 이 못은 스님에게 시주를 하지 않고

거름을 퍼 준 어느 부자의 집터로서 저주를 받아 그 집이 연못으로 되었고,

며느리만 스님의 말을 듣고 아이를 업은 채 스님을 따라 가다가

이곳에서 뒤를 돌아다 보는 바람에 바위가 되었는데

아기업은바위라고 한다.

 

 

 

 

어금니바위를 찾아보고 다시 되돌아온 갈림길에서 상투봉으로~

 

 

 

 

 

 

 

영인면에 위치한 영인저수지..

 

 

 

 

상투봉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영인산 주봉들..

 

 

 

 

영인산휴양림 산림박물관 뒤에 있는 신선봉 깃대봉 연화봉을 바라보는데 곰 쓸개를 씹은 것처럼 씁쓸하다..

 

깃대봉 이름은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때 아산만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와

평택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싸워 이긴 일본군이 영인산에 깃발을 꽂은 곳이라서 유래되었다..

 

사생결단을 표현을 할 때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 하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고 하는데

어두운 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 이런 말은 안 썼으면 좋겠다.. 

 

 

 

 

산림박물관과 영인산 정상 신선봉..

 

 

 

 

영인산 깃대봉과 연화봉..

 

 

 

 

 

 

 

청솔모는 쥐목 다람쥐과의 포유류인데 날렵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인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없던 외래종이라거나 유해조수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잘못된 상식이다..

 

 

청솔모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살았으며 알려진 것처러 유해한 동물이 아니다..

청설모의 원말은 청서모(靑鼠毛)인데 청서의 털이된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붓을 만드는 원료로 청설모의 꼬리털을 많이 이용하였다.

워낙 청서의 털이 유명하다보니 청서라는 원래 이름보다 청설모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다람쥐와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이다.

 

 

 

 

 

 

 

스트로브잣나무(White pine)는 겉씨식물 구과식물아광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북아메리카 동부지역이 원산이다.

높이 25~50m, 지름 1m 정도이며 수형은 원추형이다.

잎은 5개씩 달리고 길이는 6~14cm이고 청록색이며 가늘고, 횡단면에 2개의 수지구(樹脂溝)가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수피는 잣나무보다 미끈하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원추형이며 길이 8~20cm, 지름 2.5cm 정도로서 다소 구부러지며 다음해 9월에 익는다.

종자는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5~7mm이고 자갈색 바탕에 검은 점이 있으며 날개가 있다.

 

원산지에서는 중요한 조림수종이지만 한국에서는 1920년경에 도입되었으나 많이 심지 않는다

 

 

 

 

한국이 원산지인 잣나무와 귀화종 스트로브잣나무는 모두 잎이 5개씩 달려서 구별이 쉽지 않다..

 

스트로브잣나무 잎은 가늘고 수피가 연한 회색을 띠고 매끄러우며

열매는 긴 원통형으로 밑으로 쳐지고 구부러진다. 

스트로브잣나무는 가로수 아파트단지 공원 등에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잣나무는 잎이 억새서 찔리면 따끔할 정도인데 수피는 벗겨지면서 암갈색이고

열매는 원통형으로 뒤로 젖혀진다..

 

 

 

 

리기다소나무(Pitch pine)는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삼엽송 미국삼엽송 세잎소나무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 동북연안이 원산지이며 척박한 곳에서도 잘자라는데

원산지에서는 높이 약 25m, 지름 약 1m에 이른다.

가지가 넓게 퍼지고 싹 트는 힘이 강하여 원줄기에서도 짧은가지가 나와 잎이 달리므로

다른 소나무류와 쉽게 구별이된다.

나무껍질을 붉은빛을 띤 갈색이며 깊게 가라진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3개씩 모여 나기로 달리고 비틀어지며 길이가 7~14cm이며 잔 톱니가 있다.

굵은 줄기에도 새로 나온 잎이 다발로 돋아난다. 겨울눈은 잿빛을 띤 흰색이다.

 

암수한그루이며 5월에 배우체가 형성된 수배우체는 노란빛을 띤 자주색의 긴 원기둥 모양이며

새순 밑동에 여러 개씩 달린다.

구과는 달걀 모양의 원뿔형이며 길이 3~7cm이다. 다음해 9월에 익으며 짧은 가시가 있고,

오랫동안 가지에 달려 있다.

종자는 검은빛을 띤 갈색으로 날개가 있고 길이 4~7mm, 지름 2.5~3mm이다.

 

황폐한 산지를 복구하고 연료림 확보를 위해 1907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와

전국의 산과 들에 대규모로 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목재의 재질이 나쁘고 송진이 많이 나오고 옹이가 많아

펄프로서도 적당하지 않아 쓰임새가 적다.

반면 송충의 피해가 강하고 어디서나 잘자라기 때문에 과거 조림(造林)에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3개씩 모여 달려서 삼엽송 또는 세잎소나무라고도 한다.

 

바늘 같은 잎이 1개씩 달리면 전나무..

잎이 2개씩 모여 달리면 소나무..

잎이 3개씩 모여 달리면 리기다소나무..

잎이 5개씩 모여 달리면 잣나무..

 

 

 

 

 

 

 

상투봉을 바라보는데 상투 같기도 한데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이 잡힌다~ 

상투봉 우측 아래는 영인산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

 

 

 

 

 

 

 

영인산 제2매표소를 높은 곳에 설치해서 2,000원, 소인은 1,000원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궂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회원수가 많은 산악회에서는 입장료를 안 낼려고

세심사에서 많이 시작을 하는 것 같다~

 

 

 

 

 

 

 

영인산 제2매표소에서 상투봉으로~

 

 

 

 

 

 

 

영인산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 좌측은 상투봉..

우측은 상투봉에서 진행해야 할 닫자봉..

 

 

 

 

닫자봉은 상투봉 우측 계단으로 진행~

 

 

 

 

상투봉은 영인산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 좌측으로 진행..

 

 

 

 

상투봉과 영인산 생태연못..

 

 

 

 

 

 

 

 

 

 

영인산 휴양림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에서 상투봉으로~

 

 

 

 

 

 

 

 

 

 

 

 

 

 

 

 

영인산 휴양림 제2매표소 아래는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

 

 

 

 

상투봉 정상과 계단에 도색작업 중이라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약품이 빗물에 녹아서 산에 스며들 것 같았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투봉은 산의 형상이 상투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하여 상투봉이라 불리고 있는데

낙조와 주위 경치가 일품인데 미세먼지와 날씨가 흐려서 아쉬움이..

 

 

 

 

상투봉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위치한 높이 299m 산..

 

 

 

 

상투봉에서 삽교호를 바라보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다..

 

 

 

 

상투봉에서 닫자봉은 조금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진행해야 할 닫자봉 뒤는 영인산 신성봉 깃대봉 연화봉인데 멀게 느껴진다..

 

 

 

 

상투봉에서 닫자봉으로~

 

 

 

 

 

 

 

 

 

 

 

 

 

 

 

 

닫자봉은 소류지를 지나서 오름이 시작..

 

 

 

 

 

 

 

 

 

 

 

 

 

소류지에서 닫자봉 정상까지 급경사의 오름..

 

 

 

 

영인산 닫자봉에는 진달래가 꽃망을을 터트리기 시작했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닫자봉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상투봉..

 

 

 

 

 

 

 

 

 

 

닫은 닻의 옛말인데 닫자봉 이름은 배를 한곳에 멈추어 있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갈고리가 달린 기구 즉 Anchor(앙카, 닻)을 닮아서 유래된 것 같다~

영인산 정상 신선봉에 배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데 

닫자봉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닫자봉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창리에 위치한 높이 275m 산..

 

 

 

 

 

 

 

닫자봉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영인산 정상 신선봉으로~

 

 

 

 

 

 

 

닫자봉에서 영인산 정상 신선봉을 바라보는데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은 잡히는데 조금 멀게 느껴진다..

 

 

 

 

영인산성을 따라 설치된 계단을 바라보는데 에.....효.....한숨이 절로... 

 

 

 

 

영인산성을 따라서 956개의 계단이 정상 신선봉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국내에서 최고로 긴 계단인 것 같다..

들바람 산에 다니면서 여태껏 본 것 중에서 제일 긴 계단인 것 같다..

 

 

 

 

 

 

 

 

 

 

 

 

 

 

 

 

 

 

 

 

 

 

갈림길에서 영인산성으로~

 

 

 

 

 

 

 

 

 

 

 

 

 

 

 

 

 

 

 

 

영인산성도 궁금했지만 그 옆에 설치된 956개의 계단도 무척 궁금했었다~

 

 

 

 

영인산성에 관한 이야기~

 

 

 

 

 

 

 

국내에서 최고로 긴 영인산성 956개의 계단~

 

 

 

 

계단을 제일 싫어하는 마눌님을 모시고 왔더라면 아마도 들바람은 집에서 쫓겨났을 것 같기도~ㅎ

 

 

 

 

영인산 휴앙림 산림박물관과 상투봉..

 

 

 

 

닫자봉과 상투봉..

 

 

 

 

영인산 연화봉..

 

 

 

 

영인산 연희봉에 있는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은 민족의 역사 및 문화적 가치 재조명과

아산만 일대의 국제무역항 건설과 공업단지 조성 그리고 아산 온천 개발에 따른

배후 휴식 공간을 마련해 세워진 탑으로 높이 30m, 둘래 26m이다. 

 

 

 

 

 

 

 

계단이 끝나는 곳 우측에 956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대한민국 최장의 계단~

 

 

 

 

 

 

 

영인산(靈仁山)은 지리적인 요충지로 과거 아산현의 배산(背山)이자 서해안 일대의 명산으로 정상을 중심으로

백제 시대에 축성한 영인산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영인산 인근에는 나당연합군의 상륙(660년) 장소와

청일전쟁(1894년)의 격전지가 있으며, 6.25 이후에는 이 곳 정상을 중심으로 미군이 주둔하는 등

고난의 역사가 많았으나 현재는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으로 아산시가 전국적으로 성장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휴양림, 수목원, 박물관 등과 연계하여 많은 사람들이

휴양과 교육, 여가 등을 목적으로 즐겨 찾는 장소가 되고 있다..

 

 

 

 

 

 

 

영인산은 충청남도 아산신 영인면에 위치한 높이 364m 산..

 

 

 

 

영인산에서 입암산으로 연결된 자세한 지도가 없다..

 

 

 

 

 

 

 

 

 

 

아산기맥도 마쳤고 아산시에 있는 왠만한 유명한 산은 찾아본 것 같기도~

 

 

 

 

영인산과 입암산은 주위 경치가 좋다고 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아쉬움이..

 

 

 

 

영인산에서 입암산으로 진행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는 등로를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격었다고 하여서 긴장을 하였는데 들바람은 순조로웠다~

 

 

 

 

영인산 산행도 산행이지만 김옥균선생 유허지는 꼭 찾아보고 싶었다~

 

 

 

 

아산로로 길게 나있는 괘적은 아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어금니바위가 있는 곳~

 

 

 

 

133봉 쉼터에서 잘못된 이정표를 보고 신성테크 위까지 왔다리 갔다리 했는데

GPS를 꺼내보고 나서야 이정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왠지 생각보다도 조금 길게 느껴졌던 산행..

 

 

 

 

아산만 일대를 바라보는데 세심사만 겨우 보이고 미세먼지 때문에 뿌다..

 

 

 

 

세심사(洗心寺)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영인산에 위치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에 창건하였으며 654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자장이 중창하였다고 전하나 이를 입증할만한 기록이 없다.

세심사는 조선후기까지 신심사(神心寺)라고 하였으나 1968년 일타(日陀)와 도견(道堅)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개명을 하였다.

 

 

 

 

 

 

 

조금 초라해 보이는 점심이지만 들바람에게는 진수성찬~

 

 

 

 

영인산 정상 신선봉에는 배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데 닻(앙카)를 닮은 닫자봉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영인산 정상 신선봉에 있는 배 모양의 전망대에서~

 

 

 

 

영인산 정상 신선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데 진행해야 할 입암산이 멀리서 뿌옇게 보이는데

바로 아래 좌측 봉우리 위에 있는 무덤에서 등로가 좌우로 갈라지는 것이 보인다~

좌측은 세심사로 진행을 하고, 우측은 입암산으로 진행한다~

 

 

 

 

영인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입암산..

 

 

 

 

입암산은 흰색 건물 옆에 있는 계단 좌측으로~

 

 

 

 

영인산 정상 산선봉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입암산으로~

 

 

 

 

 

 

 

 

 

 

이번 산행 중 제일 중요한 갈림길인데 영인산 신선봉 바로 아래 있는 봉우리에서 입암산은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애를 먹은 것 같았다~

무덤에서 좌측은 세심사와 골프장으로 진행한다..

입암산은 무덤에서 우측으로~

 

 

 

 

입암산으로 진행하면서 두 곳의 채석장을 보았는데 

좌측으로 첫 번째 채석장도 보이고

입암산도 다가온다..

 

 

 

 

 

 

 

 

 

 

영인산 정상에서 입암산으로 진행하면서 첫 번째로 만난 채석장..

 

 

 

 

냉정고개와 입암산..

 

 

 

 

입암산 우측은 채석장..

 

 

 

 

냉정고개에서 입암산은 냉정리, 복흥골버스정류장 부스를 조금 지나 논두렁을 가로질러

사슴농장 검정색 하우스 앞에서 좌측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끝나는 곳에서 능선으로 붙어야 한다~

 

 

 

 

 

 

 

 

 

 

영인산 아래에 있는 첫 번째 채석장..

 

 

 

 

 

 

 

 

 

 

 

 

 

채석장 입구..

 

 

 

 

 

 

 

채석장 입구에서 냉정리고개로~

 

 

 

 

냉정리고개는 영인산로 좌측으로~

 

 

 

 

 

 

 

냉정고개는 아름다운골프장입구를 지나서~

 

 

 

 

입암산은 냉정리, 복흥골버스정류장 부스를 조금 지나서

냉정리고개에서 우측 논두렁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냉정고개에 입암산과 공세성당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논두렁을 가르키고 있다~

 

 

 

 

 

 

 

입암산은 냉정리, 복흥골버스정류장 조금 위 있는 냉정고개에서 눈두렁을 가로질러서

평강사슴농장 옆에 있는 검정색 하우스 좌측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논두렁에서 입암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냉정고개에 있는 평강사슴농장 입석과 냉정리, 복흥골버스정류장..

 

 

 

 

입암산은 평강사슴농장 검정색 비닐하우스 좌측 철책을 따라서~

 

 

 

 

입암산은 검정색 비닐하우스 좌측 철조망을 따라서~

 

 

 

 

입암산은 철조망이 끝나는 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해서 능선으로~

 

 

 

 

냉정고개에서 평강사슴농장을 지나 입암산으로 진행하는데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조금 혼란이 있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다~

 

 

 

 

 

 

 

 

 

 

 

 

 

냉정고개에서 입암산은 공장을 좌측으로 두고 진행을 해야 한다..

 

 

 

 

 

 

 

 

 

 

 

 

 

 

 

 

 

 

 

 

 

 

 

 

 

 

 

 

 

 

 

잔다리고개..

 

 

 

 

 

 

 

 

 

 

 

 

 

입암산..

 

 

 

 

입암산으로 진행한 등로 옆에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은데 

이런 공장 운영하시는 사장님께서야 말로 

애국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금산과 영인저수지가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다..

 

 

 

 

멀게만 느껴지는 입암산..

 

 

 

 

지나온 영인산을 바라보는데 꽤 멀리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도..

 

 

 

 

 

 

 

 

 

 

 

 

 

 

 

 

 

 

생강나무는 쌍떡잎식물 녹나무목 녹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산지의 계곡이나 숲 속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는 3~6m이고, 수피는 회색을 띤 갈색이고 매끄럽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 원형이고 길이가 5~15cm이고

윗부분이 3~5개로 얕게 갈라지며 3개의 맥이 있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가 1~2cm이다.

꽃은 암수딴그루 단성화이고 3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꽃대 없이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수꽃은 화피조각 6개와 9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화피조각 6개와 1개의 암술, 그리고 헛수술 9개가 있다.

작은꽃자루는 짧고 털이 있다. 열매는 장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7~8mm이고 9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새로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므로 생강나무라고 한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꽃이 같은 시기에 피고 꽃 모양이 같아서 구별하기 쉽지 않다..

 

산수유는 수피가 상처가 났을 때처럼 생긴 딱지처럼 보이고 꽃자루가 있다..

생강나무는 수피가 매끈하고 꽃자루가 없는 듯 보인다..

 

 

 

 

 

 

 

133봉 쉼터에서 잘못된 이정표를 보고 신성테크 위까지 왔다리 갔다리를 했는데 알바는 힘도 빠지고 정말 싫다..

잘못된 이졍표을 세우신 공무원은 지금 감옥에 있는 전직 두 대통령보다도 죄가 더 클 것 같다~

잘못된 이졍표을 세우신 공무원은 살고 싶으면 해외로 망명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ㅎ

 

 

 

 

133봉 숨터에 있는 이정표는 반대 방향이 되어야 한다~

 

 

 

 

133봉 쉼터에서 잘못된 이정표를 보고 신성테크 위까지 왔다리 갔다리했는데

GPS를 꺼내보고 나서야 이정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133봉 쉼터로 되돌아 갔다..

 

 

 

 

다시 되돌아온 133봉 숨터에 있는 잘못된 이정표에서 입암산으로~

 

 

 

 

 

 

 

입암산 채석장은 규모가 엄청난데 뭘케는지?..

 

 

 

 

채석장 위를 바라보는데 등로가 입암산으로 향하고 있다..

 

 

 

 

 

 

 

 

 

 

석산 갈림길..

 

 

 

 

 

 

 

 

 

 

 

 

 

 

 

 

지금대로라면 입암산은 조만간에 흔적도 없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채석장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먼지가 날렸는데 너무너무 싫었다..

 

 

 

 

 

 

 

 

 

 

입암산(笠岩山)은 바위가 사람처럼 서 있고 머리에 한개의 돌이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갓을 쓴 것 같다 하여 유래되었다..

 

 

 

 

입암산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에 위치한 높이 208.9m 산..

 

 

 

 

입암산 정상에서 냉정저수지를 바라보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다..

 

 

 

 

냉정저수지..

 

 

 

 

입암산 정상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조금 쉬고 싶었지만 채석장에서 소음도 들리고

돌가루도 날리는 것 같아서 곧바로 공세리성당으로~

 

 

 

 

 

 

 

 

 

 

입암산에서 공세리성당까 등로가 순하다~

 

 

 

 

 

 

 

 

 

 

천등말 갈림길..

 

 

 

 

 

 

 

채석장 뒤에 있는 신성테크 공장을 바라보는데 133봉에 있는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알바 생각이..

 

 

 

 

133봉 쉼터에서 잘못된 이정표를 보고 신성테크 우측 위까지 왔다리 갔다리했다..

 

 

 

 

채석장 규모가 엄청난데 조만간에 입암산은 없어질 것 기도..

 

 

 

 

 

 

 

 

 

 

 

 

 

 

 

 

천주교공세리성당공원묘원..

 

 

 

 

 

 

 

 

 

 

 

 

 

아름답게 다가오는 공세리성당~

 

 

 

 

 

 

 

 

 

 

공세리성당을 찾아보고 인주파출소 옆에 있는 인주파출소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역사 깊은 아름다운 공세리성당~

 

 

 

 

 

 

 

 

 

 

 

 

 

 

 

 

 

 

 

 

 

 

 

 

 

공세리성당(貢稅里聖堂)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5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15개의 공소가 있었다.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였던 공세창(貢稅倉)에서 유래한다.

충청도는 한국 최초로 천주교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한국 천주교가 창설된 지역이다.

 그 결과 많은 공소가 생겼는데 공세리는 공소가 있었던 곳이다.

1895년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 천주교회 첫 신부로 부임하였고 아산군 천안군 공주군 진천군을 관할하였다.

드비즈 신부는 서울 주교관으로 부임하였다가 1897년 다시 공세리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고

1930년까지 재임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충청도 지역의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1895년 6월 예전의 합덕성당 전신인 양촌성당(陽村聖堂)에서 분리 설립하였으며,

현재는 대전교구 소속이다.  

 

 

 

 

 

 

 

 

 

 

 

 

 

공세리성당에 있는 순교자 묘지는 1801년~1873년 신유박해(辛酉迫害)와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한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신 곳이다.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리기까지 많은 박해가 있었는데 

1만 5천여명의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서

순교를 하였다.

 

 

 

 

아름다운 공세리성당에서 촛불 봉헌도 하고 기도도 하고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차분한 마음도 들고 참 좋았다~

 

 

 

 

 

 

 

역사 깊은 아름다운 공세리성당을 나와서 인주파출소(공세리입구)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와서 

16시 50분에 도착한 612번버스를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온양온천역 주위에서 국밥에 쐐주 한잔하고 무궁화호를 타고 귀경~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 도착시간은 기점 출발 시간에 5분을 더하면 된다..

공세리입구는 인주파출소버스정류장..

 

 

 

 

 

 

 

 

 

 

공세리입구(인주파출소)버스정류장 도착 시간표..

 

 

 

세월 / 송문정

 

흰 강아지 한 마리 휘익 골목을 지나갑니다

그림자도 따라갑니다

 

가을날 노루꼬리 만한 햇살이

목을 빼고 바라봅니다

 

이내 햇살도 골목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잠깐이었습니다

 

 

아산시에 위치한 김옥균선생 유허지, 영인산, 공세리성당은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지금쯤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한반도의 정세가 청일전쟁 때처럼 강대국에 의해서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역사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던 산행~

부활절 미사에 참석을 못해서 그동안 마음이 안 좋았는데

역사 깊은 아름다운 공세리성당을 찾아서 기도와

묵상을 하는데 차분한 마음도 들고 참 좋았다~

 

언제 : 2018년 3월 27일

어디 : 영인농협버스정류장-김옥균선생유허지-영인산주차장-영인산휴양림입구-어금니바위-

제2매표소-영인산 휴양림 잔디광장 생태학습지구 생태연못-상투봉-닫자봉-영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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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입구(인주파출소)버스정류장-공세리성당

산행 시간 : 09시 19분~16시 19분

날씨 : 흐리고 미세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