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항에서 택시를 타고 썬크루즈로 되돌아와서 front desk에서 짐을 찾아서 허균허난설헌 생가와
초당 두부마을에 위치한 초당성당을 찾기 위해서 썬크루즈리조트버스정류장에서
10시 50분에 출발하는 109-1번버스를 타고 강릉고속시외버스터미널로~
썬크루즈-정동진-강릉고속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썬크루즈에서 강릉터미널까지 약 45분 소요..
강릉고속시외버스터미널 주위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찾기 위해
다시 강릉버스터미널로 되돌아와서 206번버스를 타고
강릉고등학교로~
강릉버스터미널에서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운행하는 버스는 206번이나 207번버스를 타면 된다..
206번버스는 강릉고등학교 앞에 내려서 조금 걸어야 하고
207번버스는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운행을 한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운행하는 207번버스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해서
제일 먼저 도착한 206번버스를 타고
강릉고등학교로~
강릉고속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206번버스를 타고 강릉고등학교 앞에 있는 버스종점에
20여분만에 도착..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강릉고등학교 앞 206번버스정류장에서 13분 가량 조금 더 진행~
강릉은 날씨가 포근해서 벌써 아름다운 매화꽃이 피었다~
아름다운 꽃도 피고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사거리에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우측으로~
강릉고등학교 앞 206번버스종점에서 쉬엄쉬엄 걸어서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까지
약 13분 소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시문에 뛰어난 천재 교산 허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홍길동전(洪吉童傳)인데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최초의 한글 소설.
허균 작품으로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남궁선생전 등이 있다.
허균(許筠)은 1569년 강원도 강릉에서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맏형 허성과 둘째 형 허봉은 부친 허엽과 더불어 조선 시대 명신으로 성리학과 문장 외교 활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허균의 다섯살 위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허균(1569~1618)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 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여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복직을 하여 춘추관기주관.형조정량을 지내고 1602년 사예 사복시정 등을 거쳐 전적.수안군수를 역임하였다.
허균은 1606년 원접사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게십이장(偈十二章)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성호사설 등의 저술에 전해온다.
당시 명나라도 마테오리치에 의해 천주교가 막 도입 된 시점이었음을 고려하면
새로운 사상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허균은 선조 대에 붕당이 형성되었을 당시 대북에 속했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대 권신이었던 이이첨과 함께 조정의 집권새력을 형성하였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였으며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를 지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으며 같은 해 좌참찬으로 승진하였다.
허균은 3년 뒤 조카 사위인 의창군(義昌君)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역모 혐의를 받았다.
하인준.김개.김인준 등과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가산이 몰수되고 참형되었다.
당시 세자빈이 후사가 없자 허균의 딸이 세자 후궁으로 간택되었는데 후궁이 소생을 낳게 되면
허균이 실세로 등장할 우려가 있어 모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측된다.
허난설헌(許蘭雪軒) 본관은 양천(陽川), 호 난설헌(許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1563년(명종 18)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 15세 때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 모두 잃고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부산 동래에 무역하러 온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1589년(선조 22)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조선 중기 선조 때 사림이 동인과 서인이 갈라져서 사화(士禍)가 일어나 피바람이 불기도 했을 때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딸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楚姬)이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은 당시에는 남존여비가 심해서 여성들은 거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활동도 제한이 많았을 때 초희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남자와 똑 같은 교육 기회를 주었다.
허난설헌 오빠는 허성, 허봉인데 그시대에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 받는데 동생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다.
허난설헌 오빠 허봉은 허난설헌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인데 여동생의 재능일 일찍 알아보고
자신의 친구인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우게 하였다.
이달은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가르쳤는데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허난설헌은 아버지 허엽과 오빠와 스승의 격려로 조선시대 규수 중 유일한 여류 시인이 되었다.
허난설헌은 죽을 때 자신이 쓴 시 모두를 불태우라고 하였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친정집에 있는 작품들은 동생 허균이 누이의 작품을 안타갑게 여겨 난설헌집을 펴냈다.
주옥같은 시가 담겨 있는 난설헌집은 중국과 일본에서 간행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글씨에도 능했던 허난설헌~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나와서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허난설헌은 양반가의 여성이라고 해도 글을 안 가르쳐주고 이름도 안 지어주는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시를 쓰는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남편 김성립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는데
어린 두 자식마져 잇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져 유산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더욱이 좋아했던 오빠 허봉은 귀양가고 친정집은 풍지박산이 났는데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27세에 요절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寄何谷(기하곡) 오빠 하곡에게 / 허난설헌
暗窓銀燭低(암창은촉저)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유형탁고각)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초초심야한)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소소추낙엽) 쓸쓸히 가을 낙엽만 지네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요상청운궁) 아득히 가 계신 청운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산공나월백)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 덩굴에 달빛만 밝다
2016년 12월 14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있는 허난설헌묘를 찾아 보았는데
강릉시 초당에 있는 생가도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조선시대 명문 양반집 치고는 조금 소박하다는 느낌이..
허초희 허난설헌 초상화를 바라보는데 왠지 애잔한 마음이..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 보고 경포호로 진행하는데 가까이에 있다~
貧女吟(빈녀음) 가난한 처녀의 노래 / 허난설헌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마르느라면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年年還獨宿(연년환독숙)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送荷谷謫甲山(송하곡적갑산) /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라버니 하곡에게
遠謫甲山客(원적갑산객)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 우리 오라버니
咸原行色忙(함원행색망) 함경도 고원 길에 행차가 바쁘리라
臣同賈太傅(신동고태부) 귀양가는 신하는 충신 가태부와 같다지만
主豈楚懷王(주기초회왕) 귀양보내는 입금이야 어찌 어리석은 초회왕이랴
河水平秋岸(하수평추안) 강물은 가을 강 언덕에 잔잔하고
關雲欲夕陽(관운욕석양) 변방 함경도의 산 구름 석양에 물들겠지
霜楓吹雁去(상풍취안거) 서릿발 찬 바람에 기러기 나는데
中斷不成行(중단불성행) 중간에서 못가고 돌아 왔으면
閨情(규정) 여자의 정 / 허난설헌
妾有黃金釵(첩유황금채) 제에게 황금 비녀 하나 있는데
嫁時爲首飾(가시위수식) 시집 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입니다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오늘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千里長相憶(천리장상억) 천리 먼 길에 오래도록 기억해 주소서
采蓮曲(채연곡) 연꽃을 따며 부르는 노래 / 허난설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은 맑고 긴 호수엔 벽옥 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난주) 연꽃 우거진 곳에 아름다운 목련배 매여 있어요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임을 만나 물 사이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멀리 사람들이 알아보아서 반나절이 부끄러웠소
夜夜曲(야야곡) 깊은 밤의 노래 / 허난설헌
玉淚微微燈耿耿(옥루미미등경경) 옥 같은 눈물 찌금찌금 등잔불 깜박깜박
羅瑋寒幅秋宵永(라위한폭추소영) 비단 휘장 싸늘하고 가을밤은 길기도 하다
邊衣裁罷剪刀冷(변의재파전도냉) 변방에 보낼 옷 다 짓고 나니 싸늘해진 가위
滿窓風動芭蕉影(만창풍동파초영) 바람 따라 움직이는 파초 그림자만이 창을 채우네
秋恨(추한) 가을날의 한 / 허난설헌
縫紗遙隔夜燈紅(봉사요격야등홍) 비단 창문 사이에 두고 등 밝은 밤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꿈에서 깨어보니 비단 이불 한 곳이 비어있네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서릿발은 차갑고 옥초롱에는 앵무새 저 혼자 지저귀고
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불어오는 서풍에 섬돌 가득 오동잎은 떨어지네
相逢行(상봉행) 만남의 노래 / 허난설헌
相逢長安陌(상봉장안맥) 장안의 거리서 서로 만나
相向花間語(상향화간어) 꽃밭 속 찾아가 속삭였다
遺却黃金鞭(유각황금편) 황금 말채찍질 하지않았는데도
回鞍走馬去(회안주마거) 돌려세운 말은 그냥 달려갔었네
相逢靑樓下(상봉청루하) 청루에 서로 만나서
繫馬垂楊柳(계마수양류) 수양버들 아래 말 매놓고
笑脫錦貂?(소탈금초구) 웃으며 비단옷과 갓옷 벗어
留當新豊酒(유당신풍주) 신풍주를 사서 같이 마셨다네
江南曲(강남곡) 강남에서 / 허난설헌
人言江南樂(인언강남낙) 사람들 강남을 즐거운 곳이라 하지만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았습니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해마다 모래벌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단장의 이별하고 고향 가는 배를 보았답니다
閨怨(규원) 여자의 원망 / 허난설헌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달 밝은 누각에 가을이 다 가는데 나 홀로 빈 방에 있고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 서리 내린 갈대섬에는 저녁 기러기가 찾아듭니다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 예쁜 거문고 타보아도 임은 보이지 않고
경포호는 다리를 건너서~
시와 글씨에 능했던 허난설헌..
경포호(鏡浦湖)..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
아름다운 경포호에서 조금 머물다가 다시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되돌아가서
초당마을과 초당성당으로~
秋夜曲(추야곡) 가을밤의 노래 / 허난설헌
蟪蛄切切風瀟瀟(혜고절절풍소소) 애절한 쓰르라미 소리에 바람마저 스산한데
芙蓉香褪永輪高(부용향퇴영륜고) 연꽃 향기 스러지고 흰 달만 높이 떳네
佳人手把金錯刀(가인수파금착도) 아름다운 여인은 가위를 손에 쥐고서
挑燈永夜縫征袍(도등영야봉정포) 긴긴 밤에 등잔불 아래서 군복을 꿰매네
玉漏微微燈耿耿(옥루미미등경경) 물시계 소리 나직하고 등은 밝은데
羅幃寒逼秋宵永(라위한핍추소영) 비단 휘장 써늘하고 가을밤은 길구나
邊衣裁罷剪刀冷(변의재파전도냉) 변방에 보낼 옷 마르고 나니 가위도 차가운데
滿窓風動芭蕉影(만창풍동파초영) 창에 가득한 파초 그림자만 바람 따라 흔들리네
遣興(견흥) 흥에 겨워 / 허난설헌
梧桐生嶧陽(오동생역양) 오동나무 한그루가 역양에서 자라나
幾年傲寒陰(기년오한음) 차가운 비바람속에 여러 해를 견뎠네
幸遇稀代工(행우희대공) 다행히도 보기 드문 장인을 만나
劚取爲鳴琴(촉취위명금) 베어다가 거문고를 만들었네
琴成彈一曲(금성탄일곡) 다 만든 뒤 한 곡조를 타보았건만
擧世無知音(거세무지음) 온 세상에 알아들을 사람이 없네.
所以廣陵散(소이광릉산) 이래서 광릉산 묘한 곡조가
終古聲堙沉(종고성인침) 끝내 전해지지 않고 말았나 보네
鳳凰出丹穴(봉황출단혈) 봉황이 단산 둘에서 나오니
九苞燦文章(구포찬문장) 아홉 겹 깃무늬가 찬란해라
覽德翔千仞(람덕상천인) 덕을 보여주며 천길 높이 날고
噦噦鳴朝陽(홰홰명조양) 높은 소리로 산 동쪽에서 울어대네
稻粱非所求(도랴이소구) 벼나 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竹實乃其湌(죽실내기찬)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네
奈何梧桐枝(내하오동지) 어쩌다가 저 오동나무 위에는
反棲鴟與鳶(반서치여연) 올빼미와 솔개만 깃들여 있단 말인가
我有一端綺(아유일단기) 내게 아름다운 비단 한 필이 있어
拂拭光凌亂(불식광릉난)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對織雙鳳凰(대직쌍봉황) 봉황새 한 쌍이 마주보게 수놓여 있어
文章何燦爛(문장하찬란) 반짝이는 그 무늬가 정말 눈부셨지요
幾年篋中藏(기년협중장) 여러 해 장롱 속에 간직하다가
今朝持贈郞(금조지증랑) 오늘 아침 님에게 정표로 드립니다
不惜作君袴(불석작군고) 님의 바지 짓는거야 아깝지 않지만
莫作他人裳(막작타인상) 다른 여인 치맛감으론 주지 마세요
精金凝寶氣(정금응보기) 보배스런 순금으로
鏤作半月光(누작반월광) 반달 모양 노리개를 만들었지요
嫁時舅姑贈(가시구고증) 시집 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繫在紅羅裳(계재홍라상) 다홍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願君爲雜佩(원군위잡패) 서방님 정표로 차고 다니세요
不惜棄道上(불석기도상)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는 않지만
莫結新人帶(막결신인대) 새 여인 허리띠에만은 달아 주지 마세요
近者崔白輩(근자최백배) 요즘 들어 최경창과 백광훈 등이
攻詩軌盛唐(공시궤성당) 성당의 시법을 받아 시를 익히니
寥寥大雅音(요요대아음) 아무도 아니 쓰던 大雅의 시풍
得此復鏗鏘(득차부갱장) 이들을 만나 다시 한 번 쩡쩡 울리네.
下僚困光祿(하료곤광록) 낮은 벼슬아치는 벼슬 노릇이 어렵기만 해
邊郡愁積薪(변군수적신) 변방의 고을살이 시름만 쌓이네.
年位共零落(년위공영락) 나이 들어갈수록 벼슬길은 막히니
始信詩窮人(시신시궁인) 시가 사람을 가난케 한단 말을 비로소 믿겠네
仙人騎綵鳳(선인기채봉) 신선께서 알록달록 봉황새를 타고
夜下朝元宮(야하조원궁) 한밤중 조원궁에 내려오셨네
絳幡拂海雲(강번불해운) 붉은 깃발은 바다 구름에 흩날리고
霓衣鳴春風(예의명춘풍) 예상우의곡이 봄바람에 울리네
邀我瑤池岑(요아요지잠) 요지 봉우리에서 나를 맞으며
飮我流霞鐘(음아유하종) 유하주 한 잔을 권하시더니
借我綠玉杖(차아녹옥장) 푸른 옥지팡이를 빌려주시며
登我芙蓉峯(등아부용봉) 부용봉에 오르자고 인도하시네
有客自遠方(유객자원방) 멀리서 손님이 오시더니
遺我雙鯉魚(유아쌍리어) 님께서 보냈다고 잉어 한 쌍을 주셨어요.
剖之何所見(부지하소견) 무엇이 들었나 갈라서 보았더니
中有尺素書(중유척소서) 속에 편지 한 장이 있었어요
上言長相思(상언장상사) 첫마디에 늘 생각하노라 말씀하시곤
下問今何如(하문금하여)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물어셨네요
讀書知君意(독서지군의) 편지를 읽어가며 님의 뜻 알고는
零淚沾衣裾(영루첨의거) 눈물이 흘러서 옷자락을 적셨어요
丹穴(단혈)은 옛날 중국의 남쪽에 태양의 바로 밑이라고 여기는 곳..
嶧陽(역양)은 중국 소강성에 있는 지역으로 오동나무가 유명..
廣陵散(광릉산)은 진나라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혜강(223-262)이
신선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거문고 곡조인데 혜강이 사형당한 뒤에는 그 곡조가 전하지 않는다..
崔白(최백)은 최경창과 백광훈을 지칭..
朝元宮(조원궁)은 신선이 사는 궁전. 당나라 때 노자를 제사하던 도관..
瑤池(요지)는 선녀 서왕모가 산다는 곳..
流霞(유하)는 유하주로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인데 주림과 목마름을 잊는다고 함..
霓裳羽衣曲(예상우의곡)은 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치마를 예상(霓裳))이라고 하는데
중국 민악에 예상곡(霓裳曲)이 있는데 이와는 다른 당나라 현종의‘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 있다..
여기에 얽힌 전설. 개원년간, 현종이 중추의 보름달을 보고 있는데 한 도사가 지팡이를 하늘로 던지자 은의 다리가 되었다..
도사를 따라 월궁(月宮)에 가보니 뜰에서 흰 비단옷을 입은 수백 명의 선녀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에 곡명을 물으니 예상우의라 했다..
지상에 돌아와 이걸 악사에게 곡으로 만들게 한 것이 예상우의곡이라 한다.
백거이의 장한가에 나옴...
鯉魚(리어)는 잉어. 편지를 뜻하는 말, 가른다는 말은 편지봉투를 개봉한다는 뜻..
尺素書(척소서)는 한자나 되는 긴 사연의 편지..
경포호에서 허균 허난설헌 생가로 다사 되돌아와서
오래전 아이들 어릴 때 경포대로 휴가와서
미사를 보았던 초당성당으로~
초당두부마을의 유래는 허균과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許曄 1517~1580)의 호 초당(草堂)을 따서 붙여진 이름~
마눌님!! 두부 만드시는데 힘 안드나요?~
허균 허난설헌 생가에서 초당성당은 멀지 않고 찾기 쉬웠다~
초당성당은 경포고등학교 앞에~
오랜만에 찾은 초당성당을 바라보는데 옛 생각이 아련히 주마등처럼 스쳤는데
그때 성당은 조그만해 보였고 공사 중인 것 같기도 했다~
오래전 아이들 어릴 때 한 24년 전 쯤 한여름 경포해변으로 휴가 와서 미사를 보러 초당성당을 찾았을 때
복장이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임 신부님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는데 너무 고마워었다~
초당성당은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137번지에 위치..
초당성당 주보성인은 나자렛의 성요셉..
초당성당 대성전..
초당성당을 나와서 귀경을 하기 위해 초당성당 좌측에 있는 유화.동부아파트버스정류장으로~
귀경을 하기 위해 유화.동부아파트버스정류장에서 207번버스를 타고 강릉고속시외버스터미널로~
초당성당을 찾을려면 207번버스를 타고 유화.동부아파트버스정류장에서 하차..
春雨(춘우) 봄비 / 허난설헌
春雨暗西池(춘우암서지) 봄비에 서쪽 연못 어둑하니
輕寒襲羅幕(경한습라막) 가벼운 한기가 비단장막에 스며드네
愁倚小屛風(수의소병풍) 수심에 차서 작은 병풍에 기대었는데
墻頭杏花落(장두행화락) 담모퉁이 살구꽃이 떨어지누나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꼭 찾아보고 싶었던 곳인데 양반집 치고는 조금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허난설헌 초상화를 바라보는데 광주에 있는 묘와 overlap도 되고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딸내미 아들내미 어릴 때 함께 미사를 보았던 초당성당에서는 옛 생각이 아련했는데
이젠 얘들도 세월이 흘러 시집 장가 갈 나이가 되었고
들바람도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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