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 마지막 산행을 하기 위해서
구파발역 4번출입구를 나와서 롯데몰버스정류장에서
799번버스를 타고 대자동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정혜옹주묘로 진행을 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뒤돌아 보는데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이때 써야 할 것 같았다.
태고종(太古宗)은 아내와 가정이 있는 대처승(帶妻僧)이 운영하는
사찰로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제가교역자제도(在家敎役者制度)인 교임제도(校任制度)가 있다.
태고종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아 크게 늘어났는데
삼정육(三淨肉)은 먹을 수 있고 제사도 유교식으로 한다.
삼정육(三淨肉)은 나를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은 고기..
갈림길에서 진행 방향으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딸 정혜옹주(靜惠翁主)와 남편 한기(韓紀)
합장묘로 진행하기 위해서 청주 한씨 문중 묘역에 들어갔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왠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혜옹주(靜惠翁主)와 남편 한기(韓紀) 합장묘는 묘역 맨 위에 있었는데
옹주묘(翁主墓)치고는 너무 소박해서 눈을 의심할 정도였고
비문을 자세히 읽어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정혜옹주(靜惠翁主 : 1489~1507)는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성종의 10번째 딸로 어머니는 후궁 귀인 초계 정씨이다.
1489년(성종 20)에 태어나 12세 때인 1500년(연산군 6)
청백리로 이름난 형조판서 한형윤(韓亨允)의
아들 한기(韓紀)와 혼인하였다.
한기는 성종의 부마로 청평위(淸平尉)가 되었다.
왕녀로 태어났으나 검소하였고 집안 살림을 맡아했으며
서민과 같이 소박한 몸가짐으로 칭송을 받았다고 전한다.
150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갑자사화로 황해도 백천(白川)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때 복위되었다.
1507년(중종 1)에 죽었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남편 한기와 합장묘로 조성되어 있다.
정혜옹주와 한기 합장묘에서 매조산 정상으로 진행을 했는데
한여름에는 수풀 때문에 힘들겠다는 생각이..
정혜옹주묘에서 GPS로 위치 확인을 하면서 매조산 정상으로~
매조산(梅棗山)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쉼터가 있었는데
매조산은 대추를 닯아서 이름이 유래된 것 같다.
매조산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높이 159.3m 산..
매조산 정상에서 필리핀군참전기념비로~
통일로로 내려와서 통일로휴게소와 필리핀군참전기념비로~
통일로휴게소..
필리핀군참전기념비에서 건자(신림)산 장령산 대자산으로 진행을 해서
김홍집선생묘, 성녕대군묘, 최영장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혜공주와 정종묘를 찾아보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산행을 마쳤다.
필리핀군참전기념비..
필리핀군 참전기념비는 1974년 국방부에서 건립한 기념물로,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의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들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 세워졌다.
필리핀군은 아시아국 최초로 우리나라를 위해
1000여 명이 넘는 군을 파병해 주었고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해 준 나라이다.
1950년 9월 19일에 참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정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1,200평의 대지 위에 기단 높이 4.5m, 비 높이 17m,
동상 높이 3m의 비를 세웠고 부조에 조각된 50명의 모습과
표정은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난 우리 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며 탑신 전면의 부조는 필리핀
고유 민속 문화를 표현한 것이다.
비문에는 ‘태양같이 밝고 불타는 정열의 기상을 지닌
삼성좌의 용사들!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피 흘린
488명의 고귀한 영혼 위에 하나님의 가호가
영원하리라’라고 쓰여있다.
필리핀군참전기념비에서 건자(심리)산 장령산으로~
갈림길에서 청주 한씨 묘역으로~
청주 한씨 통계공묘소 입구를 가르키는 방향으로 진행해서 건자(심리)산으로~
건자(심리)산 들머리는 신풍빌라 맞은편에 있다.
들머리를 찾으면 산행 반은 성공~
건자(심리)산은 6.25때 격전지였고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이 있었다.
모든 갈등은 이번 세대에서 끝나고 다음 세대에서는 통일되었으면~
북고양과 명봉산..
건자산을 심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름 유래를 알 수 없고
주위에는 왕족과 고관대작들 무덤이 즐비했다.
건자(심리)산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위치한 높이 143m 산..
장령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동헌로 방향으로~
군부대 철책을 돌 때면 화악산과 용문산 산행 생각이~
조선시대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묘는 등산로 옆에 있었는데
경혜공주와 정종묘는 등산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자 2교에서 충민사로 진행해서 어렵게 찾았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의정과 대한제국 초대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묘(金弘集墓)를 바라보는데 지금의 정치 현실과
overlap이 되었고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홍집(金弘集 : 1842~1896)은 본관 경주(慶州) 김씨이며
개성유수를 지낸 김영작(金永爵)과 창녕 성씨의
아들(3남)로 1842년 7월에 출생하였다.
초명은 굉집(宏集)이었으나 홍집(弘集)으로 개명하였다.
천주교도이자 개화사상에 식견을 지닌 부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박규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나자 우의정 ·좌의정 등으로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한성조약(漢城條約)을 체결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후 일본 세력이 표면화되고 강력해지자,
그 힘으로 제1차 김홍집내각을 조직하고 총리대신이 되었다.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세력을 잡자 강력한 친일파 인사가 입각한
제2차 김홍집내각이 성립되었으며,
이때 ‘홍범 14조(洪範十四條)’를 발표하여
새로운 국가체계를 세우고 갑오개혁(甲午改革)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박영효(朴泳孝)·서광범(徐光範) 등과의 대립으로
내각은 와해되고, 박정양(朴定陽)의 과도내각이 들어섰다.
이후 프랑스·러시아·독일이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건
삼국간섭으로 친러파가 기용된 제3차 김홍집내각이 들어섰다.
이에 일본은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제4차 김홍집내각을 세웠다.
내각은 일본의 압력을 받아 단발령(斷髮令) 등 과격한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규탄을 받았으며,
1896년 친러파 내각의 탄생과 함께 김홍집내각은 붕괴되었다.
이듬해 2월 고종은 김홍집 몰래 친러 세력과 함께 거처를 옮기는
이른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뒤늦게 사실을 안 김홍집이 고종을 만나기 위해
급히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지만, 현실은 고종이 내린
체포 명령이었다.
고종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홍집은
광화문에 이르러 성난 군중에게 둘러싸였다.
명성황후의 시해와 친일 내각이 주도한 단발령 등으로
민심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겁을 먹은 수행원들이 일본 군대가 있는 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김홍집은 이를 사양했다.
“나는 조선의 총리대신이다.
다른 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조선 백성의 손에 죽는 것이 떳떳하다.
그것이 천명이다.”
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김홍집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때 많은 대신들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김홍집도 광화문에서 난도들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항상 조선이 발전하려면 선진 외국과 제휴해야 한다는
개화 교류사상의 확고한 신념과 이상을 피력하였다.
그의 개화사상의 특징은, 개화는 필연적으로 실현시켜야 하지만,
급진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며 점진적 방법만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무민로로 내려와서 대자 2교로~
무민로에서 바라본 성녕대군묘..
성녕대군묘(위)와 원천군과 부인묘..
대자 2교..
대자 2교에서 성녕대군묘, 최영장군묘, 경안군과 임천군묘로~
갈림길에서 성녕대군묘를 찾아보고 나서 최영장군묘로~
성녕대군(誠寧大君 : 1405~1418)은 이름 이종이고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부인은 성억(成抑)의 딸이다. 태종의 일곱째 아들이나,
첫째부터 셋째 아들이 일찍 사망하고 넷째인 양녕대군이
장자 역할을 하였으므로, 성녕대군은 실질적으로
4남으로 여겨진다. 성녕군(誠寧君)에 봉해졌다가
1414년(태종 14)에 대군이 되었으며 대광보국대부의 위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14살 때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성녕대군묘(誠寧大君墓)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산에 위치하고 있다.
굳게 잠겨 있는 성녕대군묘를 나와서 최영장군묘로~
갈림길에서 먼저 최영장군묘를 찾아보고 나서
다시 이곳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경안군과 임창군묘로~
최영장군 남이장군 임경업장군은 무속신앙에서 숭배 대상의
신(神)이 되었는데 공통점은 모두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고려말 명장 최영장군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역사에 가정(假定)이란 없지만 요동정벌이 성공했더라면
대한민국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영(崔瑩 : 1316~1388))은 본관 동주(東州). 시호 무민(武愍).
고려의 명장, 충신. 1359년 홍건적이 서경을 함락하자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쳤다.
1361년에도 홍건적이 창궐하여 개경까지 점령하자
이를 격퇴하여 전리판서에 올랐다.
이후에도 흥왕사의 변, 제주 목호의 난을 진압했으며,
1376년에는 왜구가 삼남지방을 휩쓸자 홍산에서 적을 대파했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하자,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출정을 명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좌절되었다.
후에 이성계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고봉(高峰:高陽)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개경(開京)에서 참형(斬刑)되었다.
최영 장군묘는 아버지 최원직묘 앞에 있다.
최원직(崔元直 : ?~1331)은 본관은 동주(東州: 현재 철원의 고려시대 지명).
고려 후기의 문신. 유명한 고려 말의 명장 최영(崔瑩) 장군의 아버지이다.
사헌규정, 사헌부 간관 등의 벼슬을 지냈다.
부인은 봉산 지씨(鳳山智씨)이다.
아들 최영 장군이 나라에 충성한 공로로 최원직은 사후에
상호군(上護軍)과 동원부원군(東原府院君)에 추증되었다.
1331년에 죽었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골마을 최영 장군 묘 바로 뒤에 있다.
최영장군묘에서 대자산 정상으로 진행을 하다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갈림길로 되돌아가서 경안군 및 임창군묘로 진행을 했다.
최영장군묘에서 다시 되돌아온 갈림길에서 경안군 및 임창군묘로~
경안군(慶安君) 및 임창군묘(臨昌君墓)..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 1644~1665)는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이며 임창군 이혼(1663~1729)은 경안군의 아들이다.
임창군묘(臨昌君墓)는 분성군부인 김해 허씨와의 합장묘이다.
장령산 아래 김홍집묘, 김주신묘, 김주신신도비, 영사정이 있고
좌측으로 산중턱에 경혜공주와 정종묘가 있다.
경안군 및 임창군묘에서 다시 되돌아온 대자 2교에서
경혜공주묘와 정종묘로 진행하기 위해서
해바라기요양원 옆으로~
충민사(忠愍祠)는 경혜공주와 정종 제사를 지내는 사당..
산중턱에 있는 경혜공주묘와 정종묘로 진행을 하는데
안내판도 없고 눈길이 희미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단종의 친누나이며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배경으로 제작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주인공인 경혜공주와 부군(夫君) 정종묘를 찾았는데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고 정종은 능지처참으로 죽임을 당해서
시신이 없는 봉분만 있는 가묘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 : 1436~1474)는 본관은 전주(全州).
문종의 1남 2녀 중 장녀이자 제6대 왕 단종의 친누나이다.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1450년(세종 32) 본관이 해주(海州)로 참판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과 혼인하였고 정종은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졌다.
정종이 세조 즉위 후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그와 유배 생활을 하였다.
1461년(세조 6) 승려 성탄 등과 반역을 도모하다가
정종은 능지처참(거혈형) 당하였다.
이 때, 경혜공주는 천민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순천 관비가 되었고,
이후 제21대 왕 영조 때 신분이 복원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경혜공주가 작성한 분재기(分財記)가 발견되면서
공주의 신분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골마을에
남편 정종의 묘와 나란히 있다.
정종(鄭悰 : ?~1461)은 본관 해주(海州). 시호 헌민(獻愍).
1450년(세종 32)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결혼,
영양위(寧陽尉)가 되고, 단종 초 형조판서로서 왕의 신임을 받았다.
1455년(단종 3) 수양대군 제거를 모의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친교가 있었다 하여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 해 수양대군이 즉위, 문종의 유일한 사위라는 점을 참작,
양근(楊根)에 양이(量移)되었으나,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 사건으로 죄가 가중되어
수원(水原)을 거쳐 통진(通津) ·광주(光州)에 안치되었다.
1461년 승려 성탄(性坦) 등과 모반을 꾀하였다가 능지처참되었다.
영조 때 신원(伸寃)되었고 시호가 내려졌다.
단종릉과 공주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공주의 남자는 2011년 7월 20일부터 2011년 10월 6일까지
KBS 2TV에서 방송된 24부작 특별기획드라마이다.
정치적 숙적이었던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두 자녀 이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이세령과 김승유는 조선 고종 시절 서유영이 기록한
금계필담의 '수양대군 딸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의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인물이다.
● 김승유 (金承琉) : 박시후 김종서의 막내아들.
성균관의 박사이자 종학의 강사, 이후 승정원의 주서.
경혜공주의 학습을 담당하는 강사로 배치되었으나,
세령과 경혜공주가 서로 뜻이 맞아 세령이가 대신
강론에 들어가면서 그녀와 얽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사랑해서는 안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이었다.
● 이세령 (李世姈): 문채원 세조의 맏딸.
조신한 왕가의 규수와는 거리가 있는 사고뭉치
말괄량이형의 여인이다.
아버지가 왕위를 이으면서 공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동시에 승유를 잃게 된다.
그와의 사랑을 위해 아버지와 대립하며
자신의 지위도 내던져 버리는 비운의 왕녀이다.
● 경혜공주 (敬惠公主) : 홍수현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
도도하지만 철이 없고 오만방자하다.
일가친척 중에서 세령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가장 절친한 사이였으나, 아버지들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세령과 멀어지게 된다.
왕가 내의 혈투로 인해 동생과 남편을 잃고
자신조차도 노비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다.
● 정종 (鄭悰) : 이민우 경혜공주의 남편.
세종 시절 중추원 부사이자 형조참판인 정충경의 맏아들.
승유의 절친한 친구. 부인 경혜공주와 단종을 지켜야 한다는
부마의 소임을 다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 신면 (申沔) : 송종호 신숙주의 막내아들.
한성부의 판관. 승유의 절친한 친구.
아버지 신숙주와 수양대군 사이의 밀약을 계기로
벗인 승유와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마음에 뒀던 세령과 승유의 관계에 분노를 느끼면서,
승유를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따른다.
그 후 1467년에 이시애의 난때 평정을 하다가
화살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경혜공주묘와 정종묘에서 다시 대자 2교로 되돌아와서
필리핀군참전기념비로~
다시 되돌아온 필리핀군참전기념비에서 2024년 마지막 산행을 마치고
올 때 타고왔던 799번버스를 다시 타고 연신내역으로~
연신내역에 내려 연서시장에서 따끈한 오댕으로 몸을 뎁히고 나서
전철을 타고 귀가~
갈 때와 올 때 모두 799번버스를 탔다.
대자동버스정류장에서 정혜옹주묘로 진행~
정혜옹주묘 뒤에서 매조산 정상으로 진행을 했는데
수풀이 우거진 여름철에는 조금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매조산에서 필리핀군참전기념비로 진행해서 건자(심리)산으로~
필리핀군참전기념비에서 건자(심리)산 장령산 대자산으로 진행해서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2024년 갑진년 마지막 산행을 마치고
올 때 탔던 799번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으로 이동했다.
건자(심리)산 들머리는 신풍빌라 앞에 있다.
건자산을 심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장령산과 연계되어 있다.
김홍집선생묘는 등산로 옆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는데
경혜공주묘와 정종묘는 등산로와 떨어져 있어서
대자 2교에서 진행했는데 쉽지 않았다.
경혜공주 및 정종묘는 산중턱에 있는데 이정표도 없고
눈에 덮힌 산길이 희미해서 어렵게 찾았다.
대자 2교에서 성령대군묘 최영장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혜공주묘 정종묘로 진행을 했다.
대자 2교에서 먼저 성령대군묘 최영장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로 진행~
최영장군묘에서 대자산 정상으로 진행하다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갈림길로 되돌아가서 경안군 및 임창군묘로 진행을 했다.
경혜공주묘와 정종묘에서 다시 대자 2교로 되돌아와서
필리핀군참전기념비에서 2024년 마지막 산행을 마쳤다.
2024년 갑진년 마지막 산행이 생각보다도 길었는데
내년에도 체력이 이정도 만이라도 유지되었으면~
닿지 못한 주소 / 김추인
저 소실점 바깥은 여백일 것이네
날마다 낯선 하루들이
날마다 날선 하루들이
문을 따고 들어와
소름 돋는 어제를 디밀어도
여린 것들이 날마다 행성을 떠나도
그대, 방싯 말을 거는 것은
비밀한 주소 쪽지 하나 쥔 때문이네
술패랭이나 혹등고래의 노래가 닿을
그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 여백 너머의 주소 하나 틀어쥔 채
그대, 햇살 매단 자전거 바퀴살 씽씽
달리고 있네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 꿈을 달리네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고려말 명장 최영장군도 만나 보았고
단종의 친누나이며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주인공인 경혜공주를 만났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산행~
언제 : 2024년 12월 26일
어디 : 대자동버스정류장-보현정사-정혜옹주묘-매조산-통일로휴게소-
필리핀군참전기념비-고양외국어고등학교-건자(심리)산-장령산-
김홍집선행묘-무민로-대자 2교-성녕대군묘-최영장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대자 2교-해바라기요양원-충민사-
경혜공주묘와 정종묘-충민사-해바라기요양원-
대자 2교-필리핀군참전기념비버스정류장
산행 시간 : 08시 24분~13시 44분
날씨 : 맑고 춥고 찬바람 쌩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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