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님과 함께 설악산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진행하면서 곱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 구경을 하고 싶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07시 20분에 출발하는 간성대진행 버스를 타고 백담사터미널에 내렸는데
단풍철이라서 예정 시간보다도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고 10월 26일부터 시간 변동이 있다..
백담사터미널에서 백담사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는 백담주차장까지 20여분 걸어야 한다.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한 이유는 이곳 지역이 용대리(龍垈里)라서~
백담터미널에서 백담주차장으로 쉬엄쉬엄 걸어가는데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서 마치 초겨울 날씨 같았고
옷을 얇게 입고 와서 얼어 죽을까봐 걱정을 했다~
백담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7km를 걸어가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도로가 좁아서 위험할 것 같기도 해서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운임은 편도 2,500원..
백담주차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20여분만에 백담사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백담사주차장까지 걷는 사람들 있었고 도로가 좁아 위험해 보였다.
마눌님!! 단풍도 단풍이지만 그동안 백담사가 궁금했었지요~
마눌님! 선글라스 때문에 무서워 보여요~
영시암은 백담계곡을 따라서 진행하면 된다.
금강문(金剛門)은 사찰 입구의 일주문(一柱門) 다음으로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활을 한다.
금강문은 인왕상(仁王像)이라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백담사(百潭寺)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북면 설악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에 불타버려 719년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백담(百潭)은 백가지의 못(潭)이라는 뜻으로 골짜기에 연못이 많아서 유래..
百潭寺 聾庵室 百潭茶園(백담사 농암실 백담다원)에 차를 마실려고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
백담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배 생활할 때 전기도 안 들어오고
몇 개의 전각만 있는 오지의 사찰이었는데 유명세를 타서
지금은 규모도 커졌고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한용운(韓龍雲)은 본관은 청주(淸州), 속명은 유천, 자는 정옥(貞玉),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이다.
1879년 8월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의 일을 맏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佛敎)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에서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동지들에 의하여 미아리 사설 화장장에서 다비된 뒤
망우리 공동묘지에 유골이 안치되었다.
나룻배와 行人(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음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감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을이나 거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밤에서 낫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보지도 안고 가슴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감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군말 / 한용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이다.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메는 어린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卍海記念館(만해기념관)..
卍海堂(만해당)..
-百潭寺 羅漢殿 柱聯(백담사 나한전 주련)-
塵墨劫前早成佛(진묵겁전조성불) / 오랜 진묵겁 전에 이미 일찍이 성불하셨건만
爲度衆生現世間(위도중생현세간) / 중생 제도를 위해 친히 세간에 출현하셨나니
巍巍德相月輪滿(외외덕상월륜만) / 높고 높으신 상호 둥근 달처럼 원만하시어서
於三界中作導師(어삼계중작도사) / 삼계 가운데 중생 바로 이끄는 스승이시어라
나한전(羅漢殿)은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보통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을 모신 응진전(應眞殿)과 석가삼존을 중심으로
500인의 아라한을 모신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오백나한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소승(小乘)의 최고 교법인 아라한과를 얻은
5백성중(五百聖衆)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후세에 오백나한의
숭배가 성행하여 절에 따로 나한전을 세우고, 그 상을 안치하는 관습이 생겼다.
이 오백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데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
많은 나한전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눌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물바가지가 없네요~
마눌님! 백담사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나요~ㅎ
1년 전 2019년 10월 아들내미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백담사에서 설악산 산행을 시작했는데
벌써 1년이 되었고 세월 한번 참 빠르다는 생각이 절로~
마눌님! 오랜만에 함께 했는데 무척 좋네요~
백담탐방지원센터에서 영시암까지 3.5km..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 2.5km..
이날 기온이 7도 정도 되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초겨울 같았다.
동절기에는 하절기보다 입산시간 종료가 빠르다.
마눌님!! 백담계곡에 단풍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었는데 때마침 잘찾았지요~
백담계곡에 있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표지석을 바라보는데
2년 전 2018년 6월 점봉산 산행이 문득 생각이 났다~
점봉산 산행은 어쩔수 없이 금줄을 넘어야 했는데
죄스러움이 아주 많았던 산행..
단풍 / 김태인
산을 넘던 무지게
산허리에 걸려 넘어진다
찟겨진 살 틈에서
핏방울이 흘러 골짜기에 고이자
나무들이 절기의 붓을 배 들어
제 옷에 찍어 바르고 있다
윗도리부터 아랫도리까지
永矢庵(영시암)..
설악산과 영시암..
永矢庵 大雄殿(영시암 대웅전)..
永矢庵 大雄殿 法堂(영시암 대웅전 법당)..
영시암(永矢庵)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이
1648(인조 22)년에 창건해 6년간 머물렀다.
그 뒤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91년(숙종 17) 설정(雪淨)이 증당과
비각을 중건했고 1760(영조 36)년 석존불을 개금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주지 이기호(李基鎬)가 중건했고,
1950년 6.25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梵鐘樓(범종각)과 供養間(공양간)..
永矢庵 毘盧殿(영시암 비로전)..
부처를 유형에 따라서 법신(法身, 비로나자불) 보신(報身, 아미타불) 화신(化身,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三身佛)로 나누고 있는데 비로나자불(毘盧遮那佛)은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인
법신불(法身佛)로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 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花)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오른손으로 왼손의 둘째 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모습이다.
-永矢庵 毘盧殿 柱聯(영시암 비로전 주련)-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 하늘 위 하늘 아래 부처님 같은 분 없고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 동서남북 온 세계에 또한 비할 수 없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요아진견) / 사람 살고 있는 곳을 내가 다 살펴보니
一切無有如佛子(일체무유여불자) / 모든 것은 부처님 같은 분은 있지 않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 넓고 끝이 없는 원력은 다함이 없으시고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모난궁) /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헤아릴 수 없네
영시암(永矢庵) 삼성전(三聖殿)은 격을 높여서 각(閣)을 전(殿)이라고 했다.
삼성각(三聖閣)은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로서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삼성을 따로 모실 경우에는 삼신각 독성각 칠성각 등의 전각 명칭을 붙인다.
삼성각(三聖閣)에서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인격신으로서의 산신은 나이 든 도사 모습이고,
호랑이는 대부분 산에 위치한 사찰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독성(獨聖)은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 또는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 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비구가
오른손에는 석장(錫杖),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이다.
때로는 독성 외에 차를 달이는 동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사상이다.
따뜻한 가을 햇볕이 드는 영시암 공양간(供養間) 툇마루에 앉아 마눌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알콩달콩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쉬고 나서 다시 백담사주차장으로 원점회귀~
민들레가 가을 햇살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100만부 이상 팔린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쓴 강아지똥 생각이~
겨울 돌담길 한 구석에 흰둥이가 똥을 누웠는데 그게 바로 강아지똥이다.
그때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가 그 강아지똥을 보고는
똥! 똥! 에그 더러워 하며 날아가버렸고
옆에 있던 흙덩이는 넌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라고 말했다.
강아지똥은 그만 서러워 눈물을 흘렸다.
강아지똥은 혼자가 되었고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며 쓸쓸하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봄이 되고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다.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물었다.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주시기 때문이야"
그래..그렇구나..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이 나왔다.
"그런대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다."
"네가 거름이 되어 주어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다.
강아지똥은 비를 맞으며 잘게 부서져 땅 속으로 스며들어
민들레 뿌리로 모여 들었고 줄기를 타고 올라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권정생(權正生)은 1937년 9월 10일에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 어려부터 나무장수와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으로 힘겹게 생활하였다.
객지를 떠돌면서 결핵과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평생 병고에 시달렸으며,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면서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교회 뒷편에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혼자 살면서 작품 생활을 하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도 검소하게 생활하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거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2009년 3월 그의 유산과 인세를 기금으로 하여 남북한,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 위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그의 삶과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녁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저서로는 동화에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등이네,
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치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또 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깜둥바가지 엄마 등이 있고
시집(詩集)은 어머니가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은 오물덩어리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여름에는 새벽 4시, 겨울에는 새벽 5시, 15년 동안 꼬박 종을 쳤다.
한겨울에도 장갑을 안 끼고 맨손으로 줄을 당겼는데
안동 일직교회 종탑 아래 그가 남긴 글이 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맹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평생 오줌주머니를 차고 가난한 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그가 남긴 유산이 10억원이 넘었는데 동네 사람 그 누구도 가난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유산이 있을줄 몰랐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유언을 남겼다.
-유언장 1-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민들레교회 목사
이 사람은 술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번 하지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가 귀찮으며 한계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께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며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각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 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걸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데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끝이다.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 죽은 뒤에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유언장 2-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주십시요.
화장해서 태찬이와 함께 뒷산에 뿌려달라고 해 주십시요.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요.
중동, 아프리카, 티벳트 어린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요.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마눌님! 백담계곡 단풍은 다음주가 절정일 것 같고
다시 되돌아가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지지요~ㅎ
백담탐방지원센터에서 백담사주차장으로~
백담사주차장에는 백담주차장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는데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탑승할 수 있었다..
백담주차장에 도착해서 귀경을 하기 위해서 다시 백담사터미널로~
백담사터미널에서 16시 10분 동서울버스표를 예매하고 바로 옆에 있는 설악식당에서
황태구이정식을 먹고 귀경을 했는데 단풍철이라서 예정 시간보다도 늦게 도착했지만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 보니까 동서울터미널이었고 운전을 안 해서 너무 좋았다~
백담사입구터미널 버스시간표..
인제 원통 신남 현리 서화 상남터미널 버스시간표..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 / 최정원
풋감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머물면
가지 위 고추잠자리
댕강댕강 외줄타기 시작하고
햇살 앉은 벚나무 잎사귀
노을 빛으로 가을이 익어갈 때
그리운 사람
그 이름조차도 차마
소리내어 불러볼 수 없는
적막의 고요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오지 못할
그 사람 생각을 하면
이번에는 산행이 아니라 단풍 구경을 하기 위해서 1년만에 다시 마눌님과 함께
설악산 백담사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알콩달콩 이야기를 하며
백담계곡을 따라서 영시암까지 걸었는데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고 가을 정취를 만끽했던 단풍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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