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일출을 보기 위해 스카이베이에서 경포해변 중앙광장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을 못보아서 아쉬움이 들었다..
경포해변 중앙광장은 해맞이공원..
갈매기들을 바라보는데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등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생각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에 비하면 들바람은 그동안 먹고 살기에 급급..
일출을 못보고 숙소인 스카이베이 경포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솓아지기 시작..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바라본 경포해변 중앙광장..
파도 / 신경림
어떤 것은 내 몸에 얼룩을 남기고
어떤 것은 손발에 흠집을 남긴다
가슴팍에 단단한 응어리를 남기고
등줄기에 푸른 상채기를 남긴다
어떤 것은 꿈과 그리움으로 남긴다
아쉬움으로 남고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고통으로 남고 미움으로 남는다
그러다 모두 하얀 파도가 되어 간다
바람에 몰려 개펄에 내팽개쳐지고
배다리에서는 육지에 매달리기도 하다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수평선 너머
그 먼 곳으로 아득히 먼 곳으로
모두가 하얀 파도가 되어 간다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지 않아서 남은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을..
비바람이 조금 잠잠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경포해변에서 202번버스를 타고
허균 허난설헌기념공원으로~
딸 아들 부부와 마눌님과 함께 2년만에 다시 찾은 허균 하난설헌 생가는
가을이 깊어가고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무척 아름다웠다~
시문에 뛰어난 천재 교산 허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홍길동전(洪吉童傳)인데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
허균 작품으로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남궁선생전 등이 있다.
허난설헌묘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있는데 2016년 12월 14일 산행을 마치고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찾아었다..
어린 나이에 죽은 두 아이와 함께 있는 허난설헌묘를 바라보는데
왠지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夢遊廣桑山(몽유광상산) 꿈속에서 광상산에 노닐다 / 許蘭雪軒(허난설헌)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 푸른 바다는 아름다운 옥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청란의채란) / 푸른 난새는 고운 빛깔 난새에 의지하네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 늘어지니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 달밤 찬 서리에 붉게 떨어지네
허난설헌이 23세 때 마치 27세에 자기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지은 시..
난새는 전설 속에서 봉황과 비슷한 새..
광상산은 신선이 사는 산..
삼구는 3x9=27
寄何谷(기하곡) 오빠 하곡에게 / 許蘭雪軒(허난설헌)
暗窓銀燭低(암창은촉저) /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유형탁고각) /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초초심야한) /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소소추낙엽) / 쓸쓸히 가을 낙엽만 지네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요상청운궁) / 아득히 가 계신 청운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산공나월백) /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 덩굴에 달빛만 밝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단풍으로 물들었는데 무척 아름다웠다~
山嵐(산람) 산 아지랑이 / 許蘭雪軒(허난설헌)
暮雨侵江曉初闢(모우침강효초벽) / 저녁 비가 강을 엄습하더니 새벽이 비로소 열리고朝日染成嵐氣碧(조일염성남기벽) / 아침해가 산 아지랑이를 온통 푸르게 물들이네經雲緯霧錦陸離(경운위무금륙리) / 피어오르는 구름과 퍼지는 안개가 비단으로 짜이고織破瀟湘秋水色(직파소상추수색) / 소상강 위에 헤쳐지며 가을 물빛으로 화하도다隨風宛轉學佳人(수풍완전학가인) / 바람 따라 천천히 돌며 아름다운 여인인양畵出雙蛾半成蹙(화출쌍아반성축) / 고운 눈썹을 그려보지만 반쯤은 찌푸려졌네 俄然散作雨霏霏(아연산작우비비) / 갑작스레 비가 거세게 흩뿌리며 내리더니靑山忽起如新沐(청산홀기여신목
) / 청산이 새로 목욕한 듯 홀연히 일어서누나
허균(許筠)은 1569년 강원도 강릉에서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맏형 허성과 둘째 형 허봉은 부친 허엽과 더불어 조선 시대 명신으로
성리학과 문장 외교 활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허균의 다섯살 위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허균(1569~1618)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 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여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복직을 하여 춘추관기주관.형조정량을 지내고
1602년 사예 사복시정 등을 거쳐 전적.수안군수를 역임하였다.
허균은 1606년 원접사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게십이장(偈十二章)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성호사설 등의 저술에 전해온다.
당시 명나라도 마테오리치에 의해 천주교가 막 도입 된 시점이었음을 고려하면
새로운 사상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허균은 선조 대에 붕당이 형성되었을 당시 대북에 속했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대 권신이었던 이이첨과 함께 조정의 집권새력을 형성하였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였으며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를 지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으며 같은 해 좌참찬으로 승진하였다.
허균은 3년 뒤 조카 사위인 의창군(義昌君)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역모 혐의를 받았다.
하인준.김개.김인준 등과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가산이 몰수되고 참형되었다.
당시 세자빈이 후사가 없자 허균의 딸이 세자 후궁으로 간택되었는데
후궁이 소생을 낳게 되면 허균이 실세로 등장할 우려가 있어
모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측된다.
허난설헌(許蘭雪軒) 본관은 양천(陽川), 호 난설헌(許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1563년(명종 18)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 15세 때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 모두 잃고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부산 동래에 무역하러 온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1589년(선조 22)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조선 중기 선조 때 사림이 동인과 서인이 갈라져서
사화(士禍)가 일어나 피바람이 불기도 했을 때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딸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楚姬)이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은 당시에는 남존여비가 심해서 여성들은 거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활동도 제한이 많았을 때 초희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남자와 똑 같은 교육 기회를 주었다.
허난설헌 오빠는 허성, 허봉인데 그시대에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 받는데
동생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다.
허난설헌 오빠 허봉은 허난설헌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인데
여동생의 재능일 일찍 알아보고 자신의 친구인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우게 하였다.
이달은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가르쳤는데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허난설헌은 아버지 허엽과 오빠와 스승의 격려로 조선시대 규수 중
유일한 여류 시인이 되었다.
허난설헌은 죽을 때 자신이 쓴 시 모두를 불태우라고 하였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친정집에 있는 작품들은 동생 허균이 누이의 작품을
안타갑게 여겨 난설헌집을 펴냈다.
주옥같은 시가 담겨 있는 난설헌집은 중국과 일본에서 간행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양반가의 여성이라고 해도 글을 안 가르쳐주고 이름도 안 지어주는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시를 쓰는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남편 김성립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는데
어린 두 자식마져 잇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져 유산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더욱이 좋아했던 오빠 허봉은 귀양가고 친정집은 풍지박산이 났는데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27세에 요절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을일기 / 이해인
잎새와의 이별에 나무들은 저마다
가슴이 아프구나
가을의 시작부터 시로 물든 내 마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조용히 흔들리는 마음이 너를 향한
그리움인 것을
가을을 보내며 비로소 아는구나
곁에 없어도 늘 함께 있는 너에게
가을 내내 단풍 위에 썼던 고운 편지들
한잎한잎 떨어지고 있구나
지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
붉게 물들었던 아픔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별로 솟아오르는 기쁨을
나는 어느새 기다리고 있구나
아름다운 전통차 체험관에서 식구들과 함께 한참 동안 머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따뜻한 전통차를 마시는데
날씨 때문에 분위기도 있었고 참 좋았다~
한 사람당 천원씩을 받고 봉사자님께서 차를 달여서 주시는데
수익금은 불우 이웃을 위해서 쓴다고 해서 조금 더 기부를~
감나무 / 함민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에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 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점심은 아들내미가 추천한 토담순두부집으로~
식구들이 많이 늘어서 들바람은 너무 좋네요~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나와서 다시 202번버스를 타고 강릉 중앙시장으로~
궂은 날씨지만 나름 분위기도 있고 참 좋네요~
중앙시장에서 한참 동안 돌아다니면서 군것질을 하였는데 참 좋았다~
한잔 더 하고 싶었으나 다음날 모두 출근이라서 중앙시장에서 강릉역으로 이동~
秋恨(추한) 가을날의 한 / 許蘭雪軒(허난설헌)
縫紗遙隔夜燈紅(봉사요격야등홍) / 비단 창문 저 넘어 등잔 불 밝은 밤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 꿈에서 깨어 보니 비단 이불 한 곳이 비어있네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 서릿발은 차갑고 옥초롱에서는 앵무새 우는데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 불어오는 서풍에 떨어진 오동잎이 가득하다
새로 맞이한 식구와 함께 오랜만에 강릉을 찾아서 산행과 여행을 하는데
깊어가는 가을 만큼이나 1박 2일 동안 정도 더 깊이 들었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다음 산행과 여행이 기대가 되기도~
'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아레 펜션(2020.5.30)가족 모임을 하였는데 더할 나위 없이 참 좋았다~ (0) | 2020.06.02 |
---|---|
송년회(2019.12.8)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했으면~ (0) | 2019.12.09 |
저녁 단상(斷想)(2019.7.28)장맛비가 내리는 여름 저녁은 구질구질해서~ (0) | 2019.07.27 |
2019년 기해년 1월의 단상(斷想).. (0) | 2019.02.08 |
성탄절(2018.12.25)성탄절 미사에 마눌님과 함께~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