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님과 먼 곳에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갈 형편이 못되어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인천광역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과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찾아 보고 나서
해안성당과 제물진두 순교성지에 들려서 기도를 하고 싶어서 인천역으로~
차이나타운은 인천역 1번출구를 나와서 맞은편 차도를 건너면 되는데
먼저 동화마을을 찾아보기 위해서 차도를 건너서 좌측으로 진행~
차이나타운 동화마을 자유공원은 붙어 있다~
인천역은 한국철도 탄생역..
인천역에서 도로를 건너서 좌측으로 진행해서 송월동 동화마을로~
인천역 1번출구에서 송월동 동화마을은 564m 떨어져 있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인천광역시 중구 송월동 2~3가에 조성된 동화마을은 1883년 개항 이래로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부촌이었으나
마을이 노후화되며 빈집이 늘고 고령층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4월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전동화를 테마로 하여
낡은 담에는 벽화를 그리고 곳곳에 조형물을 세웠다.
몇몇 주택은 개조되어 카페나 음식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마눌님!! 차이나타운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송월동 동화마을은 조금 생소하지요~
마눌님!! 오랜만에 함께했네요~
송월동 동화마을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자유공원 광장..
인천항..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자유공원(自由公園)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인천시 중구 송학동 1가와 전동,
북성동 3가에 걸쳐 있는 응봉산(鷹鳳山)에 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불렸다가 1957년 10월 3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고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개칭하였다.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1880년 미국 아소칸주의 리틀록에서 출생하였으며 스코틀랜드계였다.
1893년 텍사스군사학교에 입학하였고 1899년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입하여 1903년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다.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공격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6.25전쟁 때는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였다.
하지만 중공군과 전면전을 두고 투루먼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해임되었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진보단체들에 의해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와 훼손을 할려는 움직임이 일자
당시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맥아더 장군 동상을 훼손하느니 미국으로 돌려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근래에 수은불망(受恩不忘 : 은혜 받은 것은 잊지 말자)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씁쓸..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 지휘 아래 한, 미 해병대는 조선인민군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으로 인천에 상륙하여 6.25정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이다.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한, 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만에 점령을 끝냈다.
2단계로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단, 미국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마지막 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7일 정오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선배님들의 활약상을 볼때면 늘 가슴이 뭉클~
자유공원 광장..
다음에는 월미문화거리와 월미산을 찾아 보기로 마눌님과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연오정(然吾亭)은 독립운동가 조훈(趙勳, 1886~1938)의 아들인 조길이 1960년 그의 부친의 뜻을 따라 지은 정자..
연오정을 짓게 된 것은 조훈이 자유공원에 왔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에 많은 사람들이 맞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석정루(石汀樓)는 1966년에 삼화조선을 경영해 큰 돈을 벌었던 석정 이후선(石汀 李厚善) 사장이
30여년 동안 공원을 산책하면서 건강을 지켜준 보답으로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정자..
마눌님!! 전망이 좋지요~
인천항..
차이나타운..
십이지신(十二支神)은 십이신상(十二神將) 또는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고도 한다.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상이다.
이들은 열두 방위(方位)에 맞추어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도교(道敎)의 방위신앙에서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십이지신앙은 약사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이미 밀본법사(密本法師)가 약사경을 읽어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유신 장군도 약사경을 호지(護持)하는 이인(異人)과 교분을 나누었다.
이 십이지신앙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신격이 변모해 갔다.
즉, 탑을 만들 때 그 기단부에 십이신상을 조각하였는데,
경주 원원사지(遠願寺址)에 있는 삼층석탑은 그 효시가 되고 있다.
조형예술로서 십이지신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원원사탑이 건립된 8세기 중반 경덕왕 때의 일이다.
이것은 탑이 불교 건축에서 구심점으로 인식된 삼국통일 후의 일반적 경향에 따른 창출물이었다.
삼국통일 전에는 단순히 탑의 옥계(屋蓋)에 변화를 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경덕왕 이후에는 탑에 사천왕(四天王), 십이지신상 등을 부조하는 기법(浮彫)이 성행하였다.
이것은 능묘(陵墓)의 호석(護石)에도 영향을 주어 구릉형(丘陵形)의 무덤 밑부분을
원형으로 돌리고 각각 십이지신상을 안치한다.
대표적인 곳으로 김유신묘, 진덕여왕릉, 경덕왕릉, 헌강왕릉 등이 있다.
십이지(十二支)는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음양(陰陽)은 음(陰)과 양(陽)인데, 오행(五行)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백짜장은 연경에서 가장 맛있다고 해서 먹어보았는데 다른 중국집에서도 많이 팔고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다른 음식도 시킬까도 했지만은 둘이 먹기에 양이 많은 것 같고 화교로 돈이 흘러들어갈 것 같아서~ㅎ
차이나타운은 중국의 고유한 문화를 보여주는 마을이 아니라 음식점 거리..
공갈빵을 샀는데 맛이 괜찮았다~
북경 탕후르..
맛집에는 줄이 꽤 길었는데 화교 주머니 속으로 돈이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안 나온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ㅎ
동남아시아는 화교가 상권을 완전히 쥐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얼마나 다행인지~
빵 굽는 것이 조금 특이해서 살까도 생각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차이나타운에는 음식점만 있고 고유한 전통 문화를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짜장면 박물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번성한 화교가 대한민국에서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1945년 해방 당시 국내 거주 화교 수는 60만명 정도 되었는데
1961년 5.16혁명 이후부터 강력한 화교 정책으로 인해 지리멸렬(支離滅裂)했다.
화교들은 일단 돈이 한번 수중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는 일이 없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5.16혁명을 이르킨 박정희 정부가 처음한 정책이 화폐개혁이었는데
화교들의 현금 보따리를 털어내기 위한 정책이었다고도 한다.
이 당시 군사정부 정책은 현금 보유가 많은 화교의 경제활동 억제 시키면서
화교의 돈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한 정잭이었다.
정부에서 짜장면 가격부터 통일을 시켜버렸고 화교들의 부동산 및 동산 매매까지 제한을 시켰다.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만 뿌리를 못내렸다.
마눌님!! 군침이 도나요~
마눌님!! 옛 학창시절 생각이 아련하지요?~ㅎ
모든 중국음식 밑반찬에 빠지지 않은 것은 단무지 양파 춘장인데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서로 단합을 한 것 같아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해야할 것 같기도~
짜장면처럼 종류가 많은 음식도 없는 것 같다..
마눌님! 짜장면 만들기가 쉽지 않지요~
짜장면에는 미원이나 미풍 같은 흰색 조미료인 MSG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고 한다~
공화춘(共和春)은 개항 초기 1912년에 개업을 한 인천지역의 유명한 식당으로
초기 짜장면이 만들어진 곳 중 대표적인 곳으로 1883년에 폐업을 하였고
2012년 4월에 짜장면 박물관으로 새로 태어났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황금돼지의 해인데
아들내미 장가를 보내는 해이기도~
들바람도 동감~ㅎ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꼭이루어졌으면~
꽁시꽁시(恭喜恭喜)는 축하합니다라는 뜻도 있고 중국식 레스토랑이라고 하는데
짜장면 박물관을 나와서 아름다운 해안성당으로 이동~
몇 일 후면 3.1절인데 역사는 되풀이 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데
일본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해안성당(海岸聖堂)은 인천시 중구 선린동에 26번지에 위치하며 인천교구에 소속된 천주교회로서
1960년 당시 차이나타운에 4,000여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화교를 대상으로
미국메리놀회에서 1960년 7월 17일 선린성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는 중국 만주에서 사목경험이 많고 중국어에 능통한
고요셉신부를 임명하고 1966년 6월 9일에 완공하였다.
그후 중국 화교 신자가 감소하고 한국인 신자는 증가하게 되어서
1972년 10월 1일 해안성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1981년 2월 최기산보니파시오신부(전 인천교구장)가 임명되었다.
현재 해안성당은 이 지역에서 치명 당하신 10분의 순교자를 기리는
제물진두 순교성지를 관활하고 있다.
아름다운 해안성당~
해안성당 연혁..
제물포진두 순교성지는 해안성당에서 관할..
해안성당 성전..
해안성당에 기도와 묵상도 하고 8개의 촛불도 봉헌하였는데 차분한 마음도 들고 참 좋았다~
8개의 촛불 봉헌 내용은 비밀~ㅎ
차분한 시간을 가졌던 해안성당을 나와서 제물진두 순교성지로~
제물진두 순교성지로 진행하는데 때마침 인천화교역사박물관에서
성냥공장 1917을 기획 전시하고 있어서 잠시 들렸다~
UN표 성냥과 아라랑표 성냥이 눈에 가장 익숙~
성냥공장 1917을 기획 전시하고 있는 인천화교역사관을 나와서 인천 해관터 앞에 있는
제물진두 순교성지로 이동을 하는데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곳이라서
마음이 무척 설레이었다~
인천 해관터(仁川 海關)..
인천 해관은 조선정부가 1883년에 개항장인 인천에 설립한 관세 행정 기구이다.
1876년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일수교조규, 1882년 5월에는 조미수교통상조약을 체결하여
1년 이내에 비준서를 교환하기 함에 따라, 관세 행정을 담당할 기구의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조선정부는 이홍장의 추천으로 텐진 및 상하이의 독일영사관에 근무한 바 있는 묄렌도르프를 고용하였고,
그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협판으로서 대청 차관 교섭,
대일 관세 협정 등과 더불어 해관 창설의 임무를 담담하게 되었다.
인천해관의 설치는 무관세무역시대의 종결과 근대적 관세제도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해관을 장악한 외국인 해관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고액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기도 함으로써 한국의 식민지화를 재촉하는 역활도 하였다.
들바람은 진시황제보다는 마부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ㅎ
마눌님!! 진시황제 같아요~
아름다운 마눌님!! 교통경찰이 앞에 있어서 속도를 조금 늦추어야 해요~ㅎ
인천 해관터 앞에 있는 제물진두 순교성지로~
제물진두 순교성지(濟物津頭 殉敎聖地)..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이승훈 베드로의 후손들과 박순집 외가집안이 치명(致命)한 순교터로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10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참배객들이 예수님 손을 하도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게 닳았다~
해안성당에서도 촛불봉헌을 했는데 제물진두 순교성지에서도 촛불 봉헌을 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 경당(濟物津頭 殉敎聖地 經堂)..
차분한 시간을 가졌던 제물진두 순교성지를 나와서 귀가를 하기 위해서 다시 인천역으로~
제물포(濟物浦)는 인천광역시 중구 해안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포구(浦口)로서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미추홀현(彌趨忽縣, 또는 彌鄒忽縣)이 있었는데,
백제가 점령한 뒤 매소홀현이 되었다.
제물포의 지명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옛 지명인 미추나 매소는 거친 들판(맷골)
또는 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는 뜻을 가진다.
마눌님과 연탄을 바라보면서 신혼 때 단칸방에 연탄을 때던 이야기를 했는데 지난 생각들이 아련했다~
다시 되돌아온 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경~
해안성당은 지도에 표시를 안 해놓았는데 제물진두 순교성지 앞에 있는 거리에 있다..
들바람이 좋아하는 꼬막을 사기 위해서 시장에 들려서 귀가했는데
요즘 꼬막이 풍년이라서 가격도 많이 싸고 맛이 아주 좋있다~
사랑 / 김장식
나무의 가슴속에
새가 살고 있었네
깊고 오래된 상처 안에
어린 생명이 자라고 있었네
숲 속에 울려 퍼지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나무의 눈물이었네
어둠이 내리면
더욱 포근한 둥지 속
사랑은 가슴 한편을 내주는 것이었네
서울 근교 인천에 있는 송월동 동화마을과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마눌님과 함께 찾았는데 날씨도 마치 축복하듯이 좋았고 모든 것이 참 좋았던 하루~
해안성당과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기도와 묵상을 하는데 차분한 마음도 들고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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