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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 김민기

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봤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 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 생각진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 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 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2009.04.14

연주암 / 이수인

연주암 / 이수인 밤 깊은 연주암에도 가을은 찾아와 소슬바람에 풍경소리만 적막을 깨우는 구나 세상살이 지치고 곤고한 사람들 발걸음 멈추어 법당 툇마루에 잠시 몸을 기대인다 팔월이라 대보름 만월은 차고 올라 연주암 법당 안으로 유유히 흘러드누나 홀로 기도하는 저 여인이여 어긋난 인연 있거든 붙잡지 마시오 보낼 때 미움으로 화를 품지도 마오 계절도 자리를 물려줄 때를 아는 법 살붙이 같은 초록도 떨구기 위해 고운 때갈 옷을 입힌다오 스스로 보내지 못한 낙엽은 바람이 실어가나 남겨진 빈 가지는 겨우내 울음 우는 구나 우주 삼라만상에 아프지 않는 이별은 없으리니 헤어진 뒤 이미 평안을 얻었다면 서로 애틋했다 말할 수 없음이려니 나그네여 붙잡지 못한 인연 있거든 저 바람 속에 흘러 보내시게나 아쉬움이 남아야 다시..

2007.04.26

아내의 마지막 편지

아내의 마지막 편지 남자는 아내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습니다. 아내가 긴 병마를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진지 3개월, 사무치는 그리움에 절망 속을 허우적 대던 남자는 마침내 결심을 했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일단, 떠나 보리라... 목적지도 없었지만, 아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꾸려 간다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여보, 나 너무 못났지? 미안해.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상우는 이제 겨우 여섯 살, 아빠의 아픔을 이해 하기엔 너무 어린 아들이었어요. 처음엔 원망도 하겠지만, 언젠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 줄 날이 오겠지 위안하며, 가방을 쌌습니다. 출장을 핑계로 아이는 외가에 맡기기로 했어요. "상우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아빠 보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 그래야 착한 아들이..

2007.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