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마지막 편지

들산바람 2007. 4. 25. 14:12

 


아내의 마지막 편지

남자는 아내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습니다.

아내가
긴 병마를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진지 3개월,

사무치는 그리움에
절망 속을 허우적 대던 남자는
마침내 결심을
했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일단,
떠나 보리라...

목적지도 없었지만,
아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꾸려 간다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여보,
나 너무 못났지?
미안해.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상우는 이제 겨우 여섯 살,
아빠의
아픔을 이해 하기엔
너무 어린 아들이었어요.

처음엔
원망도 하겠지만,
언젠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 줄
날이 오겠지 위안하며,
가방을 쌌습니다.

출장을 핑계로
아이는 외가에 맡기기로
했어요.

"상우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아빠 보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
그래야 착한 아들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마지막으로
아내의 체취가 가득한 집안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일기장을 하나를 발견했어요.

일기장을 펼치려는 순간,
툭 하고 편지가 떨어졌습니다.

편지는
아내가 죽음을 예언한 뒤,
그에게 남긴 유언장 같은 것이었죠.

"상우 생일이되면
동네 사진관에 가서 사진한장
찍어 주세요.

그리고 화장대
서랍에 꼭 맞는 액자가 있으니까,
거기에 넣어 거실에
걸어줘요.

똑같은 걸
스무개 샀는데,
열 네개 남았으니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해 달라는 거예요.

찬장에 둔
와인은 당신 마시면 안 돼요.

우리아들
태어나던 해 담근 건데,
신혼여행 갈 때 싸서 보내 주세요."
편지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름에 출근할 때
선크림 바르는 거 잊지 마세요.
안 그러면 피부가 상해서 늙어 보일거야.

봄, 가을엔
꼭 구충제를 먹어야 해요.
당신도, 상우도, 강아지도 같이요.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은 아이를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여기까지 읽고
남자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당부는 계속 되었어요.
"영구치가 나면 치과에 가서
불소치료를 받게해
주세요.

새 친구가 생기면
어떤 아이인지 꼭 만나보세요"
그리고,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건
당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거예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아내의 편지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았어요.

그리고
상우를 데리고,
사진관부터 찾았습니다.

남자는 앞으로
약한 마음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거실 벽에 상우 사진을 걸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슬퍼할 틈도 없을 겁니다.
아내가 미주알 고주알 당부한 일들을
들어 주어야 하니까요.

아빠와 어린 아들,
부자는 사진을 보며,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옮긴글)

(김용신의 FM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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