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언젠가 한번은
매미처럼 앵앵 대다가
우리도 기약없는 여행길 떠나갈 것을
언젠가 한번은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쨍하고 해뜰날 기다리며 살아왔거늘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풀잎에 반짝이고
서러운 것은
서러운대로 댓잎에 서걱인다.
어제 나와
악수한 바람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산다는 것의 쓸쓸함에 대하여
누구 하나 내 고독의 술잔에
눈물 한방울 채워주지 않거늘
텅 빈
술병 하나씩 들고
허수아비가 되어
가을들판에 우리 서 있나니.
인생, 그 쓸쓸함에
바라볼수록 예쁜 꽃처럼
고개를 내밀고 그대는 나를 보는데
인생,
그 무상함에 대하여
달빛이 산천을 휘감고도
남은 은빛 줄로
내 목을 칭칭감고 있는데...
내 살아가는 동안
매일 아침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늘
그래도
외로운거야 욕심이겠지...
그런 외로움도
그런 쓸쓸함도 없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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