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모노레일, 대룡시장(2022.6.19)교동도는 유배의 섬이었다는데 공감이~

들산바람 2022. 6. 22. 19:13

산소같은 마눌님과 함께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 강화군 교동도(喬桐島)에 있는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모노레일, 대룡시장을 찾았는데 서울에서 가까이 있어서 당일치기 여행으로 괜찮았다.

 

 

 

첫 번째 검문소에서 출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민통선 임시 출입증을 받아서 교동도로 들어갔는데

검문소 한 곳을 더 거쳐야 하고 임시 출입증은 차량 안에 밖에서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김포와 강화도를 지키고 있는 자랑스런 후배 해병들을 바라보는데 지난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해병대 상징은 팔각모자, 빨간 명찰, 순검인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의 최종 과업인

산천초목도 벌벌 떤다는 해병대 순검을 없애버렸다고 하는데 다시 원위치 시켰으면..

 

 

 

연산군 유배지와 화개산 모노레일 승강장은 화개산에 있는데 화개산 전망대도 공사 중이었고

연산군 유배지도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어서 3층 루프탑에서 보았다.

 

 

 

화개산 모노레일은 눈비가 오거나 해무가 많이 낀 날에는 운행을 안 하기 때문에 날씨 확인을 하고 찾아야 한다.

이날 해무가 심해서  11시 10분에 운행을 했는데 화개산 전망대에서도 해무 때문에 볼만한 것이 없었다.

 

 

 

11시가 넘어야 모노레일을 운행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대룡시장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3층 루프탑에서 연산군 유배지와 개화산 전망대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기다렸다.

 

 

 

3층 루프탑에서 바라본 연산군 유배지와 화개산 전망대..

 

 

 

연산군 유배지(流配地)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화개산에 위치하고 있고 1506년 11월에 죽은 터이다.

연산군 묘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데  2년 전 2020년 3월 도봉산 산행을 하면서 찾아보았다. 

 

 

 

연산군(燕山君)은 1476년(성종 7) 11월 7일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에 오른 윤씨였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의 첫 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妃)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이융(李 漋)이고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1년 후 생모인 윤씨가 사망하게된 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후

방치된 윤씨의 능묘 천장(遷葬)을 두고 삼사(사헌부, 사간부, 홍문관)와 대립하였다. 

재위 4년인 1498년 7월 김일손(金馹孫)이 작성한 사초의 내용이 세조를 바판하고

붕당을 만들어 국사를 어지럽게 했다는 조의제문(弔義帝文 : 조선 성종 때

김종직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문제 삼아 이미 죽은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많은 신진 사류(士類)와

삼사에 속한 대간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조선시대 최초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키게하였다.

이 사건으로 연산군과 갈등을 빚으며 왕권을 견제했던 삼사의 역활은 축소되었다.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은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인 사치와 사냥을 즐겼고 국고의 사정은 나빠졌다.

1504년에는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경기도관찰사를 지내던 홍귀달이 숙청되었다.

이 사건은 확되대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문제로 번졌다.

성종의 후궁인 정씨(鄭氏), 엄씨(嚴氏)의 모함으로 윤씨가 내쫓겨 사사(賜死)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모 인수대비(仁粹大妃)를 구타하여 죽게 하고, 윤씨의 폐비에 찬성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 김굉필(金宏弼) 등 수 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등을

부관참시하는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켰다.

한편, 각 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등을 파견해서 미녀와 양마를 구해오게 하고,

성균관의 학생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놀이터로 삼는 등 횡음(荒淫)에 빠졌다.

경연(經筵)을 없애 학문을 마다하였고, 사간원(司諫院)을 폐지해서 언로(言路)를 막는 등

그 실정(失政)은 극에 달하였다.

 

 

 

1506년(중종 1) 훈구파를 중심으로 연산군을 폐위하려는 정변이 계획되었고 이조참판 성희안(成希顔),

중추부지사 박원종(朴元宗) 등이 1506년 9월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일으켰으며 연산군(燕山君)

폐왕(廢王)이 되어 강화도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11월 31세에 병사하였다.

실록에는 연산군이 강봉되어 폐위된지 두 달만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치세는 개국 100년의 조선조에 한 시대의 획을 긋게 하여, 이후 50년은 사화(士禍)라는

유혈극이 잇따라 일어나 선조 이후 정치 세력들이 붕당(朋黨)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파 대립으로 인해 국력은 소진되었으며 임진, 병자 등의 국난으로 국운은 쇠퇴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어 연산군이 죽은 뒤

묘를 강화도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찾았던 화개산 전망대는 공사 중..

 

 

 

 

 

 

 

 

 

마눌님! 날씨가 좋으면 북한이 훤히 보일 텐데 아쉬움이 많지요~

 

 

 

 

 

 

 

 

 

연산군 유배지와 개화산 전망대..

 

 

 

대기 중인 모노레일..

 

 

 

무료 탑승권을 받기 위해서 빵을 샀는데  살만한 게 별로 없었다.

 

 

 

 

 

 

화개산 모노레일 성인 왕복 운임은 12,000원인데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7,000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을 보여주면 무료 탑승권을 주고 있다.

 

 

 

화개산 모노레일은 9대가 운행을 하고 있고 운행 간격은 5~10분 정도..

 

 

 

 

 

 

 

 

 

화개산 모노레일은 연산군 유배지 옆으로 운행을 하고 등산로는 좌측에 있다.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전망대는 공사 중..

 

 

 

 

 

 

 

 

 

모로레일 승강장에서 17여분만에 도착한 화개산 정상..

 

 

 

 

 

 

화개산 전망대는 공사 중인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공사를

개인사업자가 하고 있어서 속도가 안 나는 것 같기도..

 

 

 

마눌님! 화개산 모노레일은 전망대가 완공난 후

날씨가 좋을 때 찾으면 좋을 것 같지요~

 

 

 

들바람! 모노레일보다는 산행이 좋지요~

 

 

 

 

 

 

해무 때문에 볼만한 게 없었던 개화산 전망대에서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서

애마를 타고 3분 거리에 있는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대룡시장으로~

 

 

 

 

 

 

공사 중인 연산군 유배지..

 

 

 

조선 제10대 국왕 연산군(燕山君, 1476.11.7~1506.11.6)은 19살에 왕위에 올라서

31살에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위될 때까지 12년 동안 제위(帝位)했는데

이때부터 조선은 당파 싸움이 일어나고 망조(亡兆)가 들기 시작했다. 

 

연산군은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에 왕에 올라서 개망나니가 되었는데

너무 일찍 칼자루를 쥐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교동도 대룡시장은 황해도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들었다.

 

 

 

 

 

 

 

 

 

 

 

 

 

 

 

 

 

 

 

 

 

 

 

 

 

 

 

 

 

 

 

 

 

 

 

 

 

 

 

대풍식당은 황해도식 냉면, 해성식당은 국밥 등을 팔고 있다. 

 

 

 

 

 

 

바지락칼국수 생각이 났지만 장터에서 먹은 국밥 괜찮았다~

 

 

 

스테비아 농법으로 재배한 토마토는 달달한 맛이 나고

요즘 인기가 좋다고 해서 조금 샀는데 괜찮았다~

 

 

 

 

 

 

대룡시장을 마지막으로 강화도 교동도 여행을 마치고 스테비아 토마토와 표고버섯을 사서

장모님께 들렸다가 귀가를 했는데 조금 일찍 출발한 덕분에 차량 정체가 없어서 좋았다~

 

 

 

사랑연고 / 김덕순 

 

여름 길목마다

금계국, 개망초 햇빛으로

사방이 빛이 난다

그늘마저도 빛이 난다 

 

고단한 일상의 상처에는

저 햇빛연고 

하루에 세 번 바르고 

 

사랑만 넣고 네 생각하면서 

정성들여 만든 

사랑연고도 하나 보내니 

마음이 조금이라도 힘들라치면 

수시로 바르도록 해라

 

아름다운 마눌님과 함께 북한과 가장 가까운 교동도를 찾았는데

자랑스런 후배 해병대들이 지키고 있어서 마음 든든했고

교동도는 유배의 섬이었다고 하는데 공감이 갔고

피란민들의 애환이 느껴졌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