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촉석루(10.12.27)마눌님과~

들산바람 2010. 12. 29. 19:45

 

 

 

 

 

 

 

 

 

 

 

 

 

진주성은 경남 진주시 남성동(南城洞) 본성동(本城洞) 에 있는 성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촉석성()이라고도 한다. 본래 백제 때의 거열성지()였다고 하며,

고려 말 공민왕 때 7차례 중수되고 왜구 방비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내성의 둘레1.7km, 외성의 둘레 약 4km이다.

 

  

임진왜란 때는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3대첩()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쳤으며,

이때 논개()는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기록에 보면 1605년(선조 38) 병사(使) 이수일()이 진()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였다. 그뒤 병사 김태허()가 1607년 포루() 12개를

증축하였고, 18년(광해군 10) 병사 남이흥()이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진주성은 대략 이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촉석루는 경남 진주시 본성동(本城洞) 진주성에 있는 누각..

 

 

 

 

 

 

촉석루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8호. 정면 5칸, 측면 4칸, 고려 말의 진주성()을 지키던 주장()의 지휘소..

1365년(공민왕 14)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입하자 총지휘는 물론

남쪽 지휘대로 사용하였으므로 남장대()라고도 하였다.

 

 

 

 

 

 

남강은 경상남도 남부를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

원류는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계천으로,

대체로 남남동의 유로를 따라서 소백산지 동사면에서 진양호로 흘러든다.

 

 

 

남강은 진양호에서 남강댐을 거친 뒤부터 남강으로 불리면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곡류하여,

하류부에서 함안군, 의령군 군계를 이루다가 창녕군,

남지읍 대안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촉석루는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낙화(), 순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재건한 것이다.

 

 

 

 

 

 

 

 

 

 

 

 

 

 

 

 

 

 

 

 

 

 

 

 

논개(論介, ? ~ 1593)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일본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참석해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성은 주씨()이고, 본관은 신안(:중국)이다. 전북 장수()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 談)에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한다.

그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월 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전라도 지역에서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자 최경회가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다. 경상도에서 진주성만이 남아 왜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최경회는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제1차 진주성 싸움).

1593년 최경회는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어 싸웠으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28일만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제2차 진주성 싸움).

 

 

 

1593년 7월 일본군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벽류()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불렀으며, 사당()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이 장수군 장수면()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1956년

'논개사당()'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다.

비문에는 ""라고 씌어 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을 열고 있다.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경인년(庚寅年) 호랑이해도 저물어 가고 있네요..

마눌님 많이 힘들었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밝아 오는 신묘년(辛卯年) 토끼해에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도록

기도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