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교장(京橋莊)(2025.5.1)극과 극을 달리는 요즘 정치와 오버랩이 되기도..

들산바람 2025. 5. 6. 15:22

 

마눌님과 함께 노동절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서울에 오랫동안 살면서도

그동안 찾아보지 못한 서울 경교장, 돈의문 박물관마을, 경희궁을 찾았는데

3곳 모두 서대문역 4번출입구 주위에 모여 있어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먼저 서울 경교장(京橋莊)부터 찾았다.

 

 

 

서울 경교장(京橋莊)은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1년 4월 6일 서울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 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건국 활동의 중심을 이룬 3대 요람이다.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崔昌學)이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으며,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

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붙임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김구가 반탁 건국 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어왔다.

이후 서울시에서 소유는 그대로 두되 전체 공간을 복원하기로 합의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하였다.

이는 2013년 3월 2일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김구(金九)는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아버지 김순영(金淳永)과

어머니 곽낙원(郭樂園)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 안동(安東), 자 연상(蓮上), 호 백범(白凡)이다.

어릴 적 이름은 창암(昌巖)이었고, 동학(東學)에 입교하면서 창수(昌洙)로 개명하였다가

이후 구(龜)를 거쳐 구(九)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같은 접주였던 이동엽(李東燁)의 공격을 받아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은거하며

고능선(高能善)에게 유학을 배웠다.

 

1919년 3·1운동 후 김구는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警務局長), 내무총장(內務總長)을 역임하였다.

또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창설하여 독립 전쟁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1926년에는 내각 수반인 국무령(國務領)에 선출되었다.

국무령이 된 김구는 노선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8년 백범일지白凡逸志의 집필을 시작하였고, 이시영(李始榮),

이동녕(李東寧)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조직하여 총재가 되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重章)이 추서되었다.

 

 

 

 

 

 

 

 

 

 

 

 

 

 

 

 

 

 

 

 

 

 

 

 

 

 

 

 

 

 

 

 

 

 

 

 

 

 

 

 

 

 

 

 

 

 

 

 

 

 

 

서울 경교장에서 돈의문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왠지 마음과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이번에 정차할 곳은 / 최혜빈

 

우리는 늘 어디로 가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저 건너의 길이 정답인 걸까?

비틀비틀, 매일매일,

불확실한 미래를 걷는 우리.

 

열차는 우리가 가고 싶은 역으로

매일매일 달려 주는데.

 

네가 길을 잃으면 내가 알려줄게.

너의 길이 무너질 것 같을 땐

내가 너를 잡아줄게.

우리는,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어.

 

서울 경교장(京橋莊)하면 먼저 백범 김구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인데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고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이념과 정치는 잔인하고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극과 극을 달리는 요즘 정치와 오버랩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