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산, 해룡산, 천보산 연계 산행을 위해 1호선 전철을 타고 의정부역으로~
소녀상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린데 나라 힘이 약하면 언제든지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지금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요동치는데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
한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왕방산을 찾기 위해서 의정부역 5-2번출구를 나와 50여m를 진행하여
흥선지하도입구버스정류장에서 경복대와 의정부역을 운행하는
138번버스를 타고 어룡3통버스정류장으로~
의정부역에서 어룡3통버스정류장까지 50여분 소요..
배차 간격은 10여분..
어룡3통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조금 당황..
어룡3통버스정류장에서 왕방산으로 진행하기 위해 43번국도 호국로를 건너서
어룡3통회관, 어룡슈퍼, 학산APT와
공장지대를 지나서 선광사로~
왕방산은 어룡3통버스정류장에서 차도를 거너 CU편의점 옆 도로로~
왕방산은 어룡3통회관을 지나서~
왕방산은 학산아파트를 지나서~
왕방산은 들판과 공장지대를 지나서~
안개 때문에 왕방산이 뿌옇다..
왕방산은 들길을 따라서~
왕방산은 들길이 끝나는 곳에서 좌측으로~
왕방산은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왕방산은 사거리에서 좌측 공장지대를 지나서 선광사로~
왕방산은 어룡동 기업인로에서 공장지대를 지나서 선광사로~
우리 나라 경제의 풀뿌리인 중소기업이 잘되야 나라 경제가 튼튼~
왕방산은 점점 운무가 걷히는 중인데 어룡3통버스정류장에서
왕방산 들머리 선광사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다~
어룡3통버스정류장에서 30여분만에 선광사 입구에 도착~
산행은 들머리만 찾으면 반은 성공~
정보가 없는 선광사..
왕방산 정상은 미륵전을 가르키는 하얀색 이정표를 따라서 한참 동안 진행~
이정표를 조금 더 위로 진행해서 중요한 갈림길에 세웠으면~
중요한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어서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직진하는 방향은 등로가 넓고 뚜렸해서 그대로 계속 진행하면 날샌다..
왕방산 정상은 우측 미륵전을 가르키는 하얀색 이정표를 따라서~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좌~~악~ㅎ
왕방산 정상으로 진행하는데 하얀색 미륵전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길라잡이를 해주었다~
갈림길에서 왕방산 정상은 미륵전을 가르키는 이정표를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우측으로~
정상으로 다가설수록 쌓인 눈도 보이고 등로가 얼어 있어서 조심조심해서 진행~
이젠 아이젠도 준비하고 겨울채비를 해야겠다~
그동안 가을과 겨울 서로 자리다툼을 하였는데 이젠 겨울로~
오랜만에 보는 설경~
왕방사로 진행하는 등로..
왕방산 헬기장..
왕방산 정자에서 정상으로 진행하는 등로에
아름다운 서리꽃이 피었는데
탄성이 절로~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왕방산에서 아름다운 상고대 볼줄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생각지도 않은 서리꽃이라서 그런지 횡재한 기분~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서리꽃~
왕방산(王方山)은 포천시의 진산으로 신라 헌강왕 3년(672)경 도선국사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소요산에서 왕방산으로 연계산행할 때 찾은 곳인데
그때 생각이 아련히~
왕방산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과 동두천시에 걸쳐 있는 높이 737m 산..
6년만에 다시 찾은 회암사를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시간을 많이 빼았겼다~
해룡산과 오지재고개..
아름다운 서리꽃도 보면서 쉬엄쉬엄 걷는데
겨울 분위기를 만끽~
오랜만에 행복이 가득한 산행~
너무 너무 좋았던 산행~
위험한 곳은 조심해서~
왕방산에서 오지재로 진행하는데 갈림길이 많다..
왕방산에서 오지재로 진행하는데 대진대학교로 진행하는 등로가 두 곳이 있다..
왕방산 전망대..
대진대학교는 증산교(甑山敎) 계통의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에서 세운 학교인데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이
사망한 뒤 분열한 뒤 여려갈래로 나뉘었다. 그 중 한 갈래인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인 조철제가 세운 태극도는
도주 조철제가 사망한 뒤 그의 유명에 따라 박한경이 뒤를 이었다. 박한경은 조철제의 아들 영래와 갈등이 심해지자
추종자들과 상경하여 광진구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를 세우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중심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인데
주요 경전은 강일순의 언행과 행적들을 적어 놓은 천경(典經)으로서 이것이 곧 신자들의 신앙지침이자
생활의 표준이 된다. 강일순을 구상천제(九天上帝), 조철제를 도주, 박한경을 도전으로 모신다.
대순진리회는 증산교 분파들 가운데 가장 조직성을 갖춘 단체로서 현대화를 지향하며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1969년 5월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중곡도장을 기공한 이래 교세가 급성장하자 1987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여주본부도장을 세웠다. 이밖에 제주수련도장, 포천수도장, 금강산토성수도장이 있다. 교육사업으로 1984년 1월 학교법인
대진학원을 설립하여 1992년 3월 경기도 포천시에 대진대학교를 개교하였다. 이밖에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분당대진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를 세웠다. 의료사업으로는 1992년 12월 의료법인
대진의료재단을 설립하고, 1998년 8월 분당제생병원을 개원한 이래 동두천제생병원, 고성제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돌탑은 Pass~
대진대학교와 오지재고개 두 번째 갈림길..
오지재고개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해룡산..
잎갈나무 군락지..
오지재(烏知滓)고개는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서 동두천시 탑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말하는데
오지(烏知)는 벽돌과 같은 옹기를 뜻하고 재(滓)는 옹기를 굽고 찌꺼기를 뜻한다.
옛날 오지재 주변에 가마터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왕방산 날머리..
해룡산은 364번국도를 건너서 포장된 군용도로로 진행~
해룡산 들머리..
해룡상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1.7km를 포장된 도로를 따라서 진행..
해룡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수위봉, 국사봉, 왕방산 / 좌측부터..
수위봉과 국사봉 사이는 수위봉(새목)고개..
수위봉 아래는 예래원공원묘지..
왕방산..
포장된 군용도로를 따라서 해룡산 정상으로 진행하는데 경사도 있고
한여름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국사봉과 왕방산..
해룡산 정상은 군부대 아래서 우측으로 50여m 진행~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 해룡산(海龍山)이 그동안 무척 궁금했었다~
해룡산은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과 동두천시 불현동 경계에 위치한 높이 661m 산..
해룡산 정상에서 점심 먹기가 마땅치 않아서
따뜻한 햇볕이 드는 장소를 찾으면서
천보산으로 진행~
바람도 없고 따뜻한 곳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점심과 마꼴리를 마시는데 아주 꿀맛~ㅎ
겨울에는 찬 김밥보다는 떡이~
천보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장림고개와 칠봉산..
천보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마차산, 소요산, 수위봉, 국사봉..
칠봉산..
천보산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등로로~
천보산은 포장된 도로를 건너서 장림고개 방향으로~
천보산은 MTB 코스로~
천보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해룡산~
장림고개와 칠봉산..
천보산과 장림고개 갈림길에서 좌측 천보산으로~
6년 전 회암사지터에서 회암사, 천보산, 장림고개, 칠봉산을 거쳐서 대도사로 하산을 하였는데
그때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는데 시간이 광속도로 가는 것 같다..
장림고개 갈림길에서 천보산은 오름과 내림이 거의 없는 순한 등로~
천보산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해룡산..
천보산 정상에서 회암사로 진행~
천보산(天寶山)은 하늘 밑 보배로운 산, 하늘의 보물이 뭍힌 산이라는 뜻인데 6년 전에 없던 정상석이 생겼다~
보배롭고와 보물이 있는 산에 서 있어서 그런지 무척 좋았다~
천보산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높이 423m 산..
국사봉과 해룡산과 왕방산..
동교저수지와 포천시 뒤는 수원산과 한북정맥..
천보산에서 마루금이 축석령고개를 지나 백석이고개로 흐르고 있다..
화암사지..
양주시 방향인데 뿌옇다..
천보산 정상에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회암사로~
회암사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칠봉산..
회암사와 선각왕사비모조비..
양주시 옥정지구 뒤는 불곡산과 도락산인데 뿌옇다..
칠봉산..
회암사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천보산 정상..
회암사와 선각왕사비모조비..
인도에서 건너온 지옹선사의 제자로서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했던 나옹선사의 부도..
고려 말의 뛰어난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의 이름은 혜근(慧勤)이다.
법호는 나옹, 호는 강월헌(江月軒), 선사의 나이 21세 때 문경 공덕산 묘적암 요연선사께 찾아가 출가했다.
나옹선사는 전국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24세 때 양주 천보산 회암사 석옹화상 회상에서 크게 깨닮음을 얻는다.
선사는 원나라 연경으로 건너가 법원사에서 인도의 승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지도를 받고 자선사 처림(處林)의 법을 잇는다.
선사는 광활한 중국을 주유하고 공민왕 7년(1358)에 귀국한다. 선사는 오대산 상두암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으나
공민왕고 태후의 청이 하도 곡진하여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 지도에 나선 곳이 황해도 신광사이다.
공민왕은 홍건적난이 진압되자 선사에게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
(王師大曹溪宗師禪敎都摠攝勸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라는 긴 이름의 벼슬을 내렸고
왕은 또다시 불교계의 중흥을 부탁한다. 이때 선사가 불교중흥의 터전으로 삼은 곳은 순천 송광사였고,
마지막 원력을 펼치는 장으로 회암사를 찾았다. 나옹선사의 지도력은 적극적인 현실참여,
실천하는 선으로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선사의 행법은 곧 혼침되어가던
고려 말 불교를 새롭게 고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회암사는 지공과 나옹에 의해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을 이루었을 만큼 위풍이 당당하고 면모가 수려한 대찰이 된다.
이곳에 머문 승려 수만도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후 혹여 정권과의 갈등이 있지는 않았을까.
마침내 나라의 관리가 나와 산문을 닫고 금하기에 이른다. 왕은 나옹선사 57세 나이에 떠날 것을
날벼락처럼 명령했다. 명령이 떨어진 그날 밀양 형원사로 가는 도중 여주 신륵사에 열만을 맞았다.
나옹화상의 법맥은 무학대사가 이었고, 목은 이색은 위와 같은 일들을 비문에 적었다.
나옹선사 비와 부도는 회암사터와 신륵사에 있다.
인도 출신 고승 지공선사 부도..
회암사에서 회암사지를 숲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포장된 도로들 따라서 진행할 수도 있다..
6년 전 천보산에서 칠봉산으로 연계 산행할 때 잠시 회암사에 들렸는데
무학대사 부도를 안 찾아 보아서 그동안 아쉬움이 있었다..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95)는 경상남도 합천군 삼기 삼가면에서 출생하였다.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1344년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 불법을 배웠다. 진주 길상사와 묘향산 금강굴 등에서 수도 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연경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나옹선사 혜근과 인도 승 지공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356년 귀국하여 1372에 왕사(王師)가 된 혜근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고려 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셩계를 만나 그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왕사가 되어,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변지무애부종수교홍리보제도대선사 묘엄존자(大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傳佛心印辯智無碍扶宗樹敎弘利普濟都大禪師 妙嚴尊者)의 호를 받고 회암사에서 지냈다.
이듬해 태조를 따라 계룡산과 한양을 오가며 지상(地相)을 보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 데 찬성하였으며
조선 건국 초기 나라가 안정하고 정착하는데 헌신하였다. 유교 바탕에서 건국된 조선에서 독특하게
불교인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로 평가된다.
1402년(태종 2) 회암사의 감주(監主)가 되었다가 그해 태종 이방원의 청을 받아 함주(함흥)에
머물고 있는 태상왕 이성계를 설득하여 한양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1403년 회암사를 삭직하였고 금강산 금장암에 머물다가 78세에 입적하였다.
회암사(檜巖寺)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에 있는 사찰로서 1328년(충숙왕 15)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서 고려에 들어온 지공화상이 인도의 아라난타사를 본떠서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후 1374년(공민왕 23)년과 1376년(우왕 2), 나옹대사가 중건, 다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1472년(성종 2)에 세조비인 정희왕후가 정현조로 하여금 다시 중건케하였다.
그후 불타고 폐사되었던 것을 1821년(순조 21)에 지공, 나옹, 무학 등 세 승려의 부도와
비를 중수하면서 옛터의 오른쪽에 작을 절을 짓고 회암사의 절 이름을 계승하게 되었다.
선각왕사모비는 고려 말 명승 나옹을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우왕 3년(1377)에 건립..
6년 전에는 회암사 입구 우측 회암사 약수터로 진행해서 천보산을 올랐다~
좌측은 포장된 도로를 버리고 숲으로 진행해서 회암사로~
숲으로 진행하는 등로..
회암사(檜巖寺)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에 있는 사찰로서 1328년(충숙왕 15)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서
고려에 들어온 지공화상이 인도의 아라난타사를 본떠서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후 1374년
(공민왕 23)년과 1376년(우왕 2), 나옹대사가 중건, 다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1472년(성종 2)에 세조비인
정희왕후가 정현조로 하여금 다시 중건케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둘째 아들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과 함께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암사는 그런 의미에서 역대 왕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이성계의 정신적 은신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이곳에 머물렀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2006년 6월쯤 이성계와
무학대사 호칭이 세겨진 대형 청동 풍탁(건물 추녀에 메달던 종)이 발견되었다.
회암사는 성종 3년(1471)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3년간에 걸쳐 중창하게 되었고, 명종 때 이르러 크게
중창하게 된다, 불심이 깊었던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은 보우대사가 회암사를 중심으로 불교 증흥을
기도한 것이다. 1565년 4월 5일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고 그 이틀 뒤인 4월 7일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유생들로부터 '보우를 처형하라, 회암사를 불태워라' 하는 상소가 올라오고 실록에는 '명종의 그 일을 걱정한다'라는
기록이 실려 있다. 초파일에 제주도로 유배된 보우대사는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피살되고 나옹화상 이후
200여년간에 걸쳐 전국 제일 도량이었던 회암사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어 불태워졌다.
회암사는 두 번 수난을 당하게 되는데 부도전에 모셔져 있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와 부도비등 유물이
광주의 토호 이응준에게 제거되고 만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지방 토호들은 절을 빼앗아 자신들 선조의
묘택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응준은 풍수사 조대진이 '세 화상의 부도와 부도비를 없에버린 후
그곳을 묘역으로 삼고 법당터에다 묘지를 쓰면 크게 길한다'라고 부추겼다.
이응준은 이를 실행했고 이 일은 7년 뒤(순조 28 1828) 세상에 알려졌다. 이응준과 조대진은 외딴 섬으로
유배 갔고, 경기 지방 승려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현제의 절터에서 800여m 떨어진 천보산 중턱에 절을 짓고
회암사의 절 이름을 이어받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산 언덕배기에 세 분의 부도와 부도비를 다시 세우고 흩어진
유물을 다시 수습했다는 기록이 무학대사의 음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지공선사와
무학대사의 몸돌을 복구하지 못하고 말았다.
회암사지터 전망대..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깃대(幢竿)를 고정하기 위하여 사찰의 입구나 뜰에 세우는 두 개의 기둥으로
사찰의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은 건다.
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입구버스정류장은 우측으로~
회암사지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칠봉산과 천보산..
귀경을 하기 위해서 회암사지버스정류장에서 78번버스를 타고 덕정역으로~
20여분 소요, 배차 간격은 10여분..
138번버스는 경복대입구버스정류장에서 흥선지하도입구버스정류장으로 10여분 간격으로 운행..
덕현고등학교와 송우리터미널을 운행하는 78번버스 배차 간격은 10여분..
만추 / 서혜미
까맣게 여문 씨앗 톡톡
햇살 사이로 벌어진다
호랑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펄럭이고
억새는 바람으로 남아
산하에 눕는다
논배미 십자가 허수아비
참새 몇 마리 날아와 쫑알대고
혼기 넘은 처녀들 삼베바지 방귀 새듯
시집 갈 날 기다린다
6년 전 천보산과 칠봉산 산행하면서 회암사에 잠시 들렸을 때 지공선사, 나옹화상, 무학대사
부도를 안 찾아보아서 그동안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궁금증이 해결되었던 산행~
왕방산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아름다운 서리꽃이 피었는데
횡재한 기분도 들었고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언제 : 2016년 11월 28일
어디 : 어룡3통버스정류장-어룡3통회관-학산아파트-어룡기업인로 공장지대-선광사-팔각정-
왕방산 정상-오지재고개-해룡산-장림고개, 천보산 갈림길-천보산-회암사-
회암사지-회암사지박물관-회암사지버스정류장
날씨 : 맑고, 찬바람 조금 불고, 연무
산행 시간 : 8시 52분~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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