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산에서..(09.7.4)
산수국..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귀과의 낙엽관목 산골짜기나 자갈밭에서 자라며 높이는 약 1m이다.
작은가지에 털이 나며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며 길이 5∼15cm, 너비 2∼10cm이다.
끝은 흔히 뾰족하며 밑은 둥근 모양이거나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겉면의 곁맥과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7∼8월에 흰색과 하늘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주변의 중성화는
꽃받침조각이 3∼5개이며 꽃잎처럼 생기고 중앙에는 양성화가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 수술은 5개이고
암술대는 3∼4개이다. 열매는 삭과(殼果)로서 달걀 모양이며 9월에 익는다. 탐라산수국은 주변에 양성화가 달리고
꽃산수국은 중성화의 꽃받침에 톱니가 있으며 떡잎산수국은 잎이 특히 두껍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분포하며 일본 타이완 등지에도 분포한다.
꽃의 전설-1
옛날 어느마을에 꽃을 좋아하는 예쁜 처녀가 있었습니다.
봄이 오자 처녀는 봄꽃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고을 원님의 아들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원님의 아들이 꽃나무 한 그루를 주었는데
원님의 아들 생각을 하면서 정성껏 키웠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처럼 그 꽃나무는 연자주색꽃을 탐스럽게 피웠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연자주색이던 꽃이 하늘색으로 변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연분홍이 되었습니다.
처녀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데 진짜 원님의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처녀의 슬픔이 너무 커서 부모님들은 새로운 혼처를 찾아 시집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혼처가 정해지자 처녀는 원님의 아들 생각을 하며
원님의 아들이 처음 처녀에게 선물 한 꽃나무를 보러 꽃밭으로 갔더니 연분홍꽃이 피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보니 꽃은 흰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처녀의 예감대로 약혼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 왔습니다.
두 번씩이나 약혼자를 잃은 처녀는 슬픔에 앞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방안에 들어앉아 있으니까
해가 바뀌어 부모님들은 다시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절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부모들은 한 청년을 찾아 강제로 처녀와 약혼을 했습니다. ‘
또 꽃빛이 변하면 어쩌나’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데
꽃은 혼인날까지 하얀 빛깔 그대로였습니다.
혼인날이 되었는데 처녀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년은 고갯길을 넘어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처녀는 통곡을 하며 ??밭을 보니
하얀빛이던 꽃이 연분홍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처녀는 부등켜안고 함께 한없이 울었습니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처녀의 슬픔이 조금씩희미해져 갔고
처녀는 새로운 청년을 만나 결혼식까지 탈없이 치렀는데
친구들의 심한 장난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처녀는 통곡을 하며 꽃밭으로 달려 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주색이던 꽃이 하늘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처녀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처녀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평생 혼자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만 했을 뿐이지
실제는 처녀인 딸을 평생 과부로 살게 할 수는 없어서
다시 부모님들은 신랑감을 구해 결혼을 했습니다.
처녀는 두령운 마음으로 꽃밭을 보았습니다.
꽃은 고운 하늘색이 그대로였습니다.
안심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랑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처녀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바쁘게 꽃밭으로 가 보니
하늘색이던 꽃이 밤사이에 흰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도 새신랑이 죽었다고 야단이었습니다. ‘
처녀가 너무 예쁘니까 귀신이 샘을 하나 봐’ ‘
벌써 남자를 다섯명이나 죽였어’
마을 사람들은 이제는 처녀를 보면 슬슬 피했습니다.
처녀의 부모들도 너무 고심한 끝에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처녀는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 버렸습니다.
죽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고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그토록 아름다운 처녀를 사람들은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두 홀아비가 청혼을 해 왔습니다.
처녀는 두 홀아비의 청혼을 거절했지만
상대방 홀아비때문으로 알고 두 홀아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싸움이 붙어 마침내 두 홀아비는 큰 상처를 입고 모두 죽었습니다.
처녀는 집을 떠나기로 하고 꽃밭으로 갔습니다.
꽃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처녀는 꽃을 원망할 마음도 없이 그대로 집을 떠났습니다.
처녀가 떠난 집은 비바람에 허물어지고 잡초만 우거졌습니다.
잡초 속에서도 그 꽃은 해마다 다시 피어났는데
그것이 수국입니다.
꽃의 전설-2
18세기 초 서양의 문물이 동양으로 들어오면서 약용식물에 관심이 많은
의사 겸 식물학자들은 앞 다투어 동양으로 진출하게 된다.
오늘날 학명에 식물이름을 붙인 명명자(命名者)로 흔히 만나는
네덜란드인 주카르느(Zuccarini)씨는,
당시 약관 28세의 나이에 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와 있다가 오타키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변하게 마련이다.
오래지 않아 변심한 그 기생은 다른 남자에게 가 버렸다.
가슴앓이를 하던 주카르느씨는 수국의 학명에다
오타키의 높임말 otaksa를 넣어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만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수국의 꽃은 처음 필 때는 연한 자주색이던 것이 푸른색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연분홍 빛으로, 피는 시기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배신자에 대한 보복으로서는
멋있고 낭만적인지 아니면 조금은 악의적인 보복인지 가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