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2025.5.25)왠지 역사 공부하는 생각이 들기도~
마눌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님과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뵙고
경동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나서 맛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고
안국역 4번출입구를 나와서 운현궁을 찾았는데
계절의 여왕에 걸맞는 날씨였고 참 좋았다.
운현궁(雲峴宮)은 한성부 중부 정선방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곳인데
원래 지명인 구름재에서 이름을 따와 운현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이 명성황후와 가례를 치른 곳이고,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며 나랏일을 보던 곳인데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에는 이 궁에서 납치되어
중국 심양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사적 제257호 운현궁(雲峴宮)은 한양 내의 궁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고,
이곳에서 대원군은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등 개혁사업을 추진했으며,
소규모의 궁궐과 같이 사대문을 갖춘 곳으로 궁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운현궁에는 창덕궁과 가깝게 왕래할 수 있는 임금 전용의 경근문과
대원군 전용의 공근문이 있었고, 담장 안에는 아재당, 안채인 이노당,
노락당이 있었으며, 선조인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과 영화루도 있었다.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궁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 동양방송(TBC) 방송국에도 일부를 넘겨주었고
대원군이 즐겨쓰던 아재당이 헐려 나가서
지금은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이노당 노락당만 남아 있다.
대원군의 사저 운현궁(雲峴宮)은 1933년 4월 26일부터 1934년 2월 1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의 장편 소설 "운현궁의 봄" 배경무대..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안동 김씨에게 핍박을 당하는 흥선군을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시련과 역경 중에도 아들 명복을 왕으로 만드는
흥선대원군을 그린다.
소설은 음산한 겨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흥선군이 박탈당한 종친의 권력을 회복과 생존을 위해 상갓집 개처럼 행세하며
김씨 일파로부터 받는 수모를 참아낸다.
그는 파락호(破落戶) 행세를 하며 대갓집 기생집 잔칫집을 기웃거리는 한편
아들 명복(命福)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시키는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흥선대원군은 외척 안동 김씨 일파에게 밀려난 신정왕후 조 대비에게 선을 대어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신정왕후 조 대비의 지아비인
익종의 대를 잇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대원군은 왕의 위에 군림하여 수렴청정함으로써 외척 안동 김씨 일가의 세를 꺾고
탐관오리를 숙청한다.
또 사색당파를 혁파하는 한편 서원을 철폐하여 유림과 양반의 행패 역시 척결한다.
雲峴宮 守直舍(운현궁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거처..
雲峴宮 老安堂(운현궁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
앵도나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앵두나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과수로 뜰에 심거나 인가 주변의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3m에 달하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나무 껍질이 검은빛을 띤 갈색이고,
어린 가지에 털이 빽빽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7cm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같이 피고 흰빛 또는 연한 붉은빛이며
꽃받침은 원통 모양이고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타원 모양이고
잔톱니와 털이 있다.
열매는 핵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1cm이고 6월에 붉은빛으로 익는다.
성숙한 열매는 날것으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있다.
열매는 이질과 설사에 효과가 있고 기운을 증강시키며,
불에 탄 가지의 재를 술에 타서 마시면
복통과 전신통에 효과가 있다.
雲峴宮 老樂堂(운현궁 노락당)은 1866년 3월 21일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졌던 곳..
雲峴宮 慶松碑(운현궁 경송비)는 고종이 어릴 때 오르내리던
소나무를 그리워해서 세운 비석..
雲峴宮 二老堂(운현궁 이노당)은 운현궁의 안채..
모란(牡丹)은 진정쌍떡잎식물 범의귀목 작약과로서 목단(牧丹)이라고도 한다.
높이 2m이며 가지는 굵고 털이 없다.
잎은 3겹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잎은 달걀모양이며 2∼5개로 갈라진다.
잎 표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잔털이 있으며 흔히 흰빛이 돈다.
꽃은 양성으로 5월에 홍색으로 피고 지름 15cm 이상이며
꽃턱이 주머니처럼 되어 씨방을 둘러싼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8개 이상이며 크기와 형태가 같지 않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서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게 깊이 패어 있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2∼6개로서 털이 있다.
열매는 9월에 익고 내봉선(內縫線)에서 터져 종자가 나오며,
종자는 둥글고 흑색이다.
모란은 많은 재배품종이 있으며 뿌리껍질을 소염 두통 요통 건위 지혈 등에 쓴다.
모란(목단)과 작약은 꽃 모양이 같아서 잎과 줄기를 보고 구별을 해야 한다.
모란(목단)은 잎 끝이 오리발 모양으로 2~5개로 갈라지며 나무이며
겨울에 지상부에 줄기가 남아 있다.
작약은 윗부분의 잎이 3개로 깊게 갈라지며 여러해살이풀이며
겨울에 지상부에 줄기가 남아 있지 않다.
雲峴宮 遺物展示館(운현궁 유물전시관)..
여흥부대부인민씨(驪興府大夫人閔氏 : 1818~1897)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이며
고종의 어머니 그리고 명성황후의 시어머니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공조판서 민치구(閔致久)의 딸로
12세인 1830년(순조 30년)에 2살 연하 흥선대원군에게 출가,
장남 이재면(李載冕)과 차남 이재황(李載晃: 高宗) 등
2남과 1녀(사위는 趙慶鎬)를 두었다.
여흥부대부인 민씨는 일찍이 천주교에 귀의하였는데,
고종의 유모인 박마르타도 세례명이 말해 주듯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고종 초기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도의 힘을 빌려
거아책(拒俄策)을 실천에 옮기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896년 10월에 영세를 받았다고 알려진다.
국왕의 생모로서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처지였으나
대원군과 민씨 척족(戚族, 성이 다른 일가) 사이에 끊임없이 정쟁이 일어나고,
두 동생 민승호·민겸호도 정쟁에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군인 대원군도 여러 번 정치적인 곤욕을 치러
불행한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조선 말기 제26대 왕 고종의 비(妃)로
고종의 황제 즉위 이후 명성황후라 칭해졌다.
본관은 여흥(驪興), 성은 민(閔)씨이며,
1851년(철종 2)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영의정에 추증된
치록(致祿)의 딸로 태어났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주변에 알려졌다.
16세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부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 비(妃)에 간택되었다.
명성황후(明成皇后)와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은 518년을 이어온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망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공(功)과 과(過)가 엇갈린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남양주시 홍유릉에 있는 홍릉에 고종과 합장되어 있는데
11년 전 2014년 12월 2일 백봉산 산행을 하면서 찾아보았고
명성황후 생가는 2년 전 2023년 2월 14일
여주 여행을 하면서 찾아보았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 1821. 1. 24~1898. 2. 22)은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이다.
본명은 이하응(李昰應)이며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동안 세도를 누려온 안동 김씨 일족들을 대부분 몰아내고,
파벌과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역량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인사 행정을 펴나가려 노력했다.
개항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침략적 자세에 대하여
척왜강경정책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서원을 철폐하고 정리해 양반과 기득권 토호들의 민폐와
노론의 일당 독재를 타도하고 남인과 북인을 채용하였으며,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 박해하였다.
명성황후와 권력투쟁을 하다가 유학자 및 (신)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에 의해 축출되었다.
대원군이 사망하자 당시 주한미국공사였던 호러스 뉴턴 알렌은
국무장관에게 한 보고에서 대원군을 이렇게 평했다.
대원군은 잔인하고 배타적이었으나, 항상 자기 나라에 대해
정의와 진실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흥선대원군 묘(興宣大院君 墓)는 11년 전 2014년 8월 22일
문안산 고래산 백봉산 연계산행을 하면서 찾아보았는데
마석역 앞에 있다.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 묘(南延君 墓)는 12년 전 2013년 9월 25일
덕숭산 원효봉 가야산 연계산행을 하면서 찾아보았다.
일본낭인 칼에 시해된 명성황후(明成皇后)는 조선 멸망을 앞당겼고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데 책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아름답게 미화(美化)하고 있어서 씁쓸한 마음이..
운현궁을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마눌님과 함께 낙원상가로 이동해서
종로3가역에서 전철를 타고 귀가~
아버님 어머님 면회 후 제기역 2번출입구을 나와서 경동시장 이곳저곳 구경하고
연탄돼지갈비 맛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쐐주 한잔을 했는데 맛은 그다지..
구름과 숨박꼭질하다가 / 안익수
가끔은 빨간 우체통에 손을 넣었어요
달빛 물든 개천에게 물어도 보았어요
까치는 산가지 분지르지 않고
감나무 동쪽으로 문을 내었대요
어제와 오늘이
구름과 숨바꼭질 하다가
아침햇살로 시간표를 지펴서
설익은 노을을 뜸 들이며 살았어요
바람이 군것질 한 점을 놓고 가는데
주소를 찾아 나간 이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어머님 아버님 면회 후 서울에 오랫동안 살면서도 찾아보지 못한 운현궁을
마눌님과 함께 찾아서 이곳저곳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왠지 역사 공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날씨도 오월의 여왕에 걸맞았던 날~